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위치한다. 17세기에 처음 조성된 것을 1874년(고종 11)에 보수하였다. 1978년 10월 10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유형(柳珩, 1566~1615)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판서 유진동(柳辰仝)의 손자이다. 무과에 급제하기 이전인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金千鎰)과 함께 싸워 공을 세웠고, 급제 후에는 정유재란(丁酉再亂)이 일어나자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이후 삼군수군통제사와 황해도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묘역의 규모는 90㎡다. 봉분은 사성(莎城)으로 둘러싸였고, 앞에는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있다. 그 오른쪽으로는 묘비가 있고 그 앞에 좌우로 문인석이 있다.
신도비(神道碑)는 묘소 아래 길 옆에 있다. 규모는 총높이 273cm로, 비신 높이 174㎝, 너비 75㎝, 두께 47㎝이고, 재료는 화강석이다. 원래의 비문은 이정구(李廷龜)가 글을 짓고, 김현성(金玄成)이 글씨를 썼으며 김상용(金尙容)이 전액(篆額)을 썼다. 현재의 비문은 이정구가 지은 것을 정학교(丁學敎)가 글씨를 쓰고 이남식(李南軾)이 전액을 쓴 것이다.
전액은 ‘증영의정보조공신진산부원군시충경유공신도비명(贈領議政輔祚功臣晋算府院君諡忠景柳公神道碑銘)’이라고 쓰여 있고, 숭정기원후 오갑술(崇禎紀元後五甲戌)이라는 사실에서 1874년(고종 11)에 다시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장군의 묘소 옆에는 조부(祖父)인 유진동(柳辰仝)의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