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탄대 선생 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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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안탄대 선생 묘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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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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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조선전기 공신 · 문신 안탄대의 무덤.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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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조선전기 공신 · 문신 안탄대의 무덤. 시도기념물.
내용

1985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안탄대의 본관은 안산(安山)이다. 중종(中宗)의 장인이자 창빈안씨(昌嬪安氏)의 아버지다.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참록되고, 적순부위(迪順副尉)에 올랐다.

부원군(府院君)이면서도 집안이 몹시 가난했고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일에는 결코 눈을 돌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검소와 겸손으로 생애를 마쳤으며 사후에는 조정에서 우의정으로 추서하였다.

외손자인 선조가 그를 우대하여 묘에 비석을 세우고 수직원(守直員)을 두어 관리하여 초벌(樵伐)을 금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묘 관리가 부실해졌다. 도로 옆에 위치한 이 묘는 안탄대 부부 묘와 풍해군 이잠(李潛)의 묘가 이웃해 있다.

안탄대묘는 쌍분으로 지름 390㎝, 높이 140㎝이다. 봉분 앞에 묘비와 상석(床石), 향로석(香爐石)이 놓여 있다. 상석 앞에 장대석(長臺石)으로 계절(階節 : 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마련했다. 배계절(拜階節 : 계절 밑에 절할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든 땅)에는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을 배치하였다.

이는 효종 때 왕명으로 능원대군(陵原大君 : 인조의 동생), 인평대군(麟平大君 : 인조의 제3왕자) 등을 비롯한 그의 외손들에게 묘를 보호하게 하고, 석물을 갖추게 하여 새로 단장한 것이라고 한다.

묘비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 170㎝, 너비 58㎝, 두께 24㎝이다. 앞면에는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事安公之墓贈貞敬夫人黃氏祔(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겸영경연사안공지묘증정경부인황씨부)’라는 명문이 있다.

묘비문을 보면 효종 때 왕명으로 비문을 지었으면서도 안산안씨(安山安氏)만을 밝히고 그의 선조와 가계(家系)를 밝히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자(字)나 호(號)를 알 길이 없고 출생일과 사망일조차 전하지 않는다. 비문은 신최(申最)가 짓고 신승(申昇)이 썼다. 비문은 금석문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경기문화재대관』(경기도, 1990)
『시흥군지(始興郡誌)』
『내 고장 안산』(안산문화원, 1990)
집필자
정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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