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 초상 및 문중 유물(高曦 肖像 및 門中 遺物)
그 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과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해 충성을 다한 공훈으로 호성원종공신 3등이 되었고, 영원군(瀛原君)에 봉작되었다. 고홍건의 아들 고두황(高斗煌) 역시 무과에 급제한 이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로 영해군(瀛海君)에 봉작되는 등한 집안 4대에 걸쳐 봉군되었는데 이는 매우 보기 드문 경우였다. 이와 같이 이 집안은 여러 대에 걸쳐 무반으로서 혁혁한 공훈을 세워 대문호를 이룸에 따라 공신녹권(功臣錄券)과 공신회맹록(功臣會盟錄)를 비롯하여 교지(敎旨), 교서(敎書), 하첩(下帖), 완문(完文), 소지(所志) 등 각종 문적 및 유물 등이 현존하게 되었다. 지정된 유물을 연대별로 보면, 중종 때 고세호로부터 4대 인조 때까지의 유물이 76점이며, 인조∼숙종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