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군(義州郡)
1388년(우왕 14)에 이성계(李成桂)가 이 곳 위화도에서 회군한 것을 기념하는 사당(祠堂)이 남아 있다. [조 선] 1402년(태종 2)에 비로소 판관(判官)을 두고, 정주(靜州) 및 위원진(威遠鎭)을 합했고, 1432년(세종 14) 4월에 토관(土官 : 토착민에게 주던 관직)을 설치하였다. 세조 때 진(鎭)을 두어 북방수비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로 삼았으며, 중국에 대한 제일의 문호가 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의주목의 호구는 531호, 1,498인이었으며, 군정(軍丁)은 익군(翼軍) 336인, 수성군(守城軍) 21인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에 피난함으로써 환도 후 의주부윤(義州府尹)으로 승격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가장 먼저 의주가 함락되어 이순신(李舜臣)의 조카인 부윤 이완(李莞)이 전사하는 등 큰 고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