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리(開拓里)
[신채호(申采浩, 1880∼1936)](E0033432), [홍범도(洪範圖, 1868∼1943)](E0064093), [유인석(柳麟錫, 1842∼1915)](E0041759) 등이 개척리로 모였고, 계동학교(啓東學校)를 비롯한 여러 한인 학교가 자리하였으며, [해조신문(海朝新聞)](E0074916), [대동공보(大東共報)](E0014222) 등의 한인 언론기관도 있었다. 하지만 1911년 5월에 러시아 당국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유행한 콜레라를 근절시킨다고 하면서, 개척리를 강제로 철거한 뒤 러시아 기병대의 주둔지로 만들었다. 개척리에 살던 한인들에게는 블라디보스토크시의 서북쪽에 자리한 새 이주지로 이주하도록 명령하였다. 개척리 북쪽 언덕 너머에는 200여 호가 거주하는 새로운 한인촌이 만들어졌고, 그것은 구개척리와 구분되어‘노바야 카레이스카야 슬라보드카’인 신개척리(新開拓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