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부(戶部)
1275년(충렬왕 1) 원나라의 강압에 의해 관제가 격하됨에 따라 호부는 판도사(版圖司)라 바뀌었고, 상서는 판서로, 시랑은 총랑(摠郎), 낭중은 정랑(正郎), 원외랑은 좌랑(佐郎)으로 고쳤다. 1298년에 [충선왕](E0058156)이 호부를 [민조(民曹)](E0020257)로 고쳤고, 판서를 상서로 개칭하고 정원은 종전과 같이 1인으로 하였다. 또 총랑을 시랑이라 하고 3인으로 늘려 그 중 1인은 타관이 겸직하도록 하고, 정랑은 낭중으로, 좌랑은 원외랑으로 하고 인원은 3인으로 늘려 모두 무신이 겸하도록 하였다. 1308년 충선왕이 다시 [민부(民部)](E0020130)라 고치고, [삼사(三司)](E0026630)와 군기도염원(軍器都鹽院)을 여기에 병합하였다. 상서를 전서(典書)라 하여 3인으로 늘리고, 총랑을 의랑(議郎)으로, 정랑을 직랑으로, 좌랑을 산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