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金度演)
1942년 일제가 조작한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 체포되어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의 선고를 받았고, 함흥형무소에서 석방될 때까지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여운형(呂運亨)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참여 권유를 거부한 장덕수와 함께 한국민주당 건설에 주력하며 미군정의 정책에 적극 참여했으며, 1946년 남조선 민주의원 의원과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에 당선되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 총선거 때 한국민주당 소속으로 서대문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국회 초대 재정경제분과 위원장에 선출되었고, 1948년 8월부터 1950년까지 초대 재무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1954년 제3대 민의원, 1958년 제4대 민의원, 1960년 5대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4·19혁명 직후인 1960년 8월 국무총리에 지명되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