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화엄석경(求禮 華嚴寺 華嚴石經)
또한, 그는 이 석경의 제작연대를 장륙전보다 훨씬 후대인 통일신라 말로 추정하면서 그 실증으로, 첫째 80권과 40권 『화엄경』은 의상 때 새겨졌을 수 없다는 점, 둘째 석각의 자체는 거의 해서(楷書)이고 서법으로 보아서는 우군서법(右軍書法)을 쓰고 있는데, 그 자체는 통일신라 말에 최치원(崔致遠)이 쓴 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와 비슷하다는 점, 셋째 화엄결사(華嚴結社)와 각화엄경불사(刻華嚴經佛事)가 최초로 시도된 것은 헌강왕 때의 일인데, 그때 최치원이 원문(願文)을 쓰고 조야(朝野)의 노력으로 40권 『화엄경』 10질을 완성하였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진응은 이 석경이 문무왕 때의 것이 아니라 헌강왕대에서 경순왕대에 이르는 기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또한, 석경의 돌이 모두 경주에서 가져온 옥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