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혜(觀惠)
이러한 대립은 먼저 북악의 희랑이 고려의 왕건을 지지하고, 남악의 관혜가 후백제의 견훤을 지지하였던 정치적인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남악과 북악의 대립은 화엄사상의 이해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악은 의상계 화엄학의 정통을 주도하던 부석사(浮石寺) 학풍을 계승한 것으로 이해되고, 남악은 지리산 화엄사(華嚴寺) 학풍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북악은 법장의 화엄을 수용하였지만, 의상 사상에 기반을 둔 신라 화엄에 중심이 있었으며, 그에 비해 남악은 화엄과 함께 『기신론(起信論)』을 동시에 강조하는 융합적 경향을 드러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관혜는 남악의 대표적인 화엄 학승으로 해인사에서 활동하였지만, 그의 저술이나 관련 문헌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그의 생애, 사상 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