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서혈사지에 있었던 신라시대의 석불좌상으로, 모두 3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광배가 없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좌불상만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좌불상은 나발(螺髮)의 머리카락에 육계(肉髻)를 거의 나타내지 않은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얼굴은 아담하면서도 단정하며, 눈·코·입·귀 등도 작고 단아한 편이어서 이 역시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목이 떨어져서 붙여놓은 자국이 보이며, 체구는 단정한 형태이다.
사각형의 단정한 상체(上體)는 양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섬약한 면을 보여준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는 상체보다 다소 큼직한 편이고 양감이 뚜렷하다. 수인은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다리 위에 올려놓는 전형적인 항마촉지인을 짓고 있다. 그런데 손은 작고 섬약하여, 신체와 함께 섬약해진 9세기 불상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두께가 얇은 통견(通肩)의 대의(大衣)는 평판적이고 섬약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가슴을 넓게 벌려 U자형를 이루고 있다. 띠 매듭은 가늘게 표현되었다.
대좌는 상·중·하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8각연화대좌(八角蓮花臺座)이다. 상대는 앙련(仰蓮: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으로 중엽연화문(重葉蓮花文)을 화려하게 새꼈다. 중대는 8각으로 다소 높은 편에 속한다. 하대는 복련(覆蓮: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의 복판연화로, 귀꽃이 달린 단정한 연꽃무늬를 새겼다. 그리고 안상(眼象)이 새겨진 큼직한 8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좌는 신체에 비하여 훨씬 높고 큼직하여 신라 말기의 독특한 비례 구성을 나타내며, 전체적으로는 섬약해진 특징을 볼 수 있다.
제2상은 제1상과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항마촉지인의 좌상이다. 이 상은 머리가 없어지고 대좌의 중대도 없어졌다. 그러나 신체가 좀 더 당당하고 대좌의 연꽃무늬들이 훨씬 더 장식적이고 섬세해진 것이 다르다. 따라서 제1상보다 다소 뛰어난 수법을 보여준다.
제3상은 지권인(智拳印)의 비로자나불상이다. 제2상처럼 머리가 없어졌고, 대좌도 상·중대가 결실되었다. 신체가 단아하고 두 손이 작으며, 평행 계단식 옷주름 등을 나타내 신라 말기의 비로자나불상이 지니는 전형적인 섬약한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이처럼 3점의 불상은 거의 비슷한 시기인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들로서 섬약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불상들이다. 충청남도 공주의 서혈사는 이 시기에 대대적인 중창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