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헌납, 집의, 예조참의, 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목호룡의 고변으로 노론 4대신이었던 아버지가 사사된 후 뒤이어 처형된 문신.
이칭
필형(必亨)
죽취(竹醉)
시호
충민(忠愍)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0년(숙종 6)
사망 연도
1722년(경종 2)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승지
관련 사건
신임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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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헌납, 집의, 예조참의, 승지 등을 역임하였으며, 목호룡의 고변으로 노론 4대신이었던 아버지가 사사된 후 뒤이어 처형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필형(必亨), 호는 죽취(竹醉).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이며, 어머니는 박세남(朴世楠)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김창흡(金昌翕)에게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05년 진사가 되고, 1710년 세마(洗馬)로 기용되었으며, 고양군수를 거쳐 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으로 재직 중 1719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언(正言)이 되었다.

그 뒤 헌납(獻納)·집의(執義)·응교(應敎)·교리(校理)·사간·예조참의·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722년 아버지가 노론4대신의 한 사람으로서 소론의 김일경(金一鏡)·목호룡(睦虎龍) 등에 의해 사사되자 울산에 유배, 뒤에 부령(富寧)으로 이배되었다가 사형당하였다.

조성복(趙聖復)·김민택(金民澤)과 함께 신임사화 때 죽은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1725년(영조 1) 관작이 복구되고,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죽취고(竹醉藁)』, 편서로는 『증보삼운통고(增補三韻通考)』가 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경종실록(景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죽취고(竹醉藁)』
『미호집(渼湖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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