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1701년에 탁휘(卓輝) 등의 화승이 제작하였다. 전체적으로 화면은 삼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물들의 배치가 일률적이어서 상당히 도식화된 느낌을 준다.
상단에는 중앙에 아미타여래를 비롯한 7여래(七如來)가 오른쪽을 향하여 합장을 하고 연화좌 위에 서 있다. 왼쪽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오른쪽에는 번(幡 : 설법할 때 절 안에 세우는 깃대)을 든 인로왕보살이 서 있다. 7여래의 위로는 오색의 찬란한 색대(色帶)가 뻗어나 있으며 이들 뒤로는 험준한 산악이 수묵산수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중단에는 오곡백과와 꽃으로 장식된 성반(盛飯 : 잘 차린 음식)의 시식대(施食臺)가 놓여져 있다. 아래 오른쪽 구석에 불을 뿜은 한 쌍의 아귀(餓鬼)가 아주 작게 묘사되었다. 시식대 아래에는 유족들이 조상에게 재를 올리는 모습과 스님들이 재 의식을 행하는 장면이 보인다.
시식대와 의식 장면, 아귀 등은 연한 녹색의 채운(彩雲)으로 구획을 하고 그 좌우에 도식적인 구름으로 단을 구획한 후 욕계(欲界)와 현실 장면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었다. 그중 중앙에 전쟁 장면을 크게 부각하여 묘사한 것이 특징적이다. 조총과 활을 겨누고 싸움을 하는 모습은 아마도 임진왜란 때의 전쟁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전쟁 장면의 양옆으로는 확탕 지옥(鑊湯地獄), 우물에 빠져 죽는 장면[落井], 호환[虎鬼], 담이 무너져 죽는 장면,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장면 등 육도 제난(六道諸難)이 묘사되었다.
그림의 각 장면이 규칙적으로 단을 나누어 묘사되어 화면이 생동감이 적고 도식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단에 민화풍(民畵風)으로 묘사된 전쟁 장면은 그림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또한 불·보살의 신체를 비롯하여 중요 부분에 설채(設彩 : 색을 칠함)된 화려한 금니, 엷고 은은하게 칠해진 붉은색, 녹색, 하늘색, 분홍색, 연녹색, 황색 등의 다양한 색채 역시 형식화된 화면에 생기를 준다. 그리고 수묵산수풍으로 묘사된 산악과 수목 처리는 당시 일반 회화 및 민화와의 연관성을 보여 준다.
이 작품에 보이는 상단·중단·하단으로 이루어진 3단 구도는 이후 18세기 감로도의 전형적인 구도가 되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3단 구도의 초기 작품으로서 조선 후기 감로도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