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송광사 화엄전 남쪽 약 350m 산기슭에 있다. 이 기와가마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송광사가 당시 사찰의 규모를 재정비하면서 사찰건축에 직접 사용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통 조선시대 기와가마가 짧고 둥근데 비해 이 가마는 대형이며 매우 큰 구조를 보이고 있다. 가마는 아궁이와 봉통부, 몸체부[燔造室] 등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특히 이 가마는 봉통부가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이는 불막음 전에 생소나무를 많이 넣어 탄소입자가 기와에 많이 스며들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인 구조로 추정된다. 또한 아궁이가 좁고 긴 것은 불막음 뒤 공기의 흡입을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조그마한 공기구멍 하나라도 없도록 하기 위한 조처로 여겨진다.
송광사에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조선 전기인 1448년(세종 30)과 1490년(성종 21) 2회에 걸쳐 기와제작 기록이 있으며, 1639년(인조 17)부터 18세기말까지 총 10회에 걸친 기와제작 기록이 남아있어 이 때 가장 왕성한 송광사의 중창불사(重創佛事)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