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35m, 너비 0.7m, 두께 0.2m. 1980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옥개석(屋蓋石) · 비신(碑身) · 대좌(臺座)를 갖춘 비와는 달리 비신 위에 옥개석이 없고, 대좌에 불교유물에서 볼 수 있는 연화문(蓮華文)이 새겨져 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굉필(金宏弼)과 조위(曺偉)가 이 곳 승평으로 유배되어 귀양살이하던 중 옥천서원 근방의 계곡을 벗삼아 소일하면서 이곳을 임청대라 한 데서 비롯된다.
대좌석은 맨 밑에 시멘트로 기초를 하고 그 위에 원형인 연화문 대좌가 있다. 비신 후면에는 총 11행의 행서음기로 비를 세운 경위를 밝히고 있다.
이 비를 세운 연대는 1565년(명종 20)으로 ‘臨淸臺’라는 글씨는 이황(李湟)이 썼고, 음기는 진사 정소(鄭沼), 공사를 맡은 사람은 진사 배숙(裵璹), 비는 당시 승평태수인 이정(李楨)이 세웠다.
원래는 현위치에서 동쪽으로 약 30m 떨어진 개천가에 있던 것을 1971년 도로확장공사로 옮겨왔다. 이 비는 무오사화의 한 유물로 당시 유배인들의 선비정신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