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소개된 신한첩으로는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과 『숙휘신한첩(淑徽宸翰帖)』이 있다. 『숙명신한첩』은 효종 · 현종 · 장렬왕후 · 인선왕후 · 명성왕후가 효종과 인선왕후의 셋째 딸인 숙명공주(淑明公主, 16401699)에게 보낸 편지를 수록한 간찰첩이다. 『숙휘신한첩』은 효종 · 현종 · 장렬왕후 · 인선왕후 · 명성왕후가 효종과 인선왕후의 넷째 딸인 숙휘공주(淑徽公主, 16421696)에게 보낸 편지를 비롯해 숙종과 인현왕후의 편지를 수록한 간찰첩이다.
두 신한첩 모두 숙명공주와 숙휘공주 후손 집안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숙명신한첩』은 1962년에 발굴되었고 『숙휘신한첩』은 1955년에 발굴되었다. 두 신한첩의 내용은 『친필언간총람(親筆諺簡總覽)』에도 소개되어 있다.
『숙명신한첩』은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구체적인 편찬 시기와 경위를 알 수 없다. 표제(標題)가 없고 간찰첩의 뒷부분이 훼손되어 있는데, 현재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이라고 되어 있는 표제는 1962년에 『숙명신한첩』을 처음 발굴한 고(故) 김일근(金一根) 교수가 써 붙인 것이다.
『숙명신한첩』에 수록된 편지는 모두 67건으로, 장렬왕후가 보낸 편지 2건, 효종이 보낸 편지 9건, 인선왕후가 보낸 편지 53건, 현종이 보낸 편지 2건, 명성왕후가 보낸 편지 1건이다. 대부분 한 면에 두 편씩 성첩(成帖) 되어 있으며 매 면마다 편명이 적혀있다. 이 가운데 현종의 편지에는 인주의 색이 생생한 어보(御寶) 세 개가 찍혀 있어 주목을 요한다.
현전하는 『숙휘신한첩』의 본래 명칭은 ‘신한첩 곤(宸翰帖坤)’이다. 정진석(鄭晋錫)이 1802년(순조 2)에 이 첩을 제작하면서 쓴 서문과 영조가 쓴 발문이 있으며 표지는 훼손되어 있다. 서문을 통해 본래 효종 · 현종 · 숙종 · 영조의 어필(御筆)을 수록한 건(乾)첩과 한글 편지를 수록한 곤(坤)첩 모두 2첩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신한첩(宸翰帖)’이 아닌 ‘언서텹’으로 명명하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진석은 효종의 부마 인평위(寅平尉) 정제현(鄭齊賢)의 5대손으로, 선산부사를 역임하였다. 서문에 첩의 말미에는 숙종 비 인현왕후가 손수 만든 선낭(仙囊) 쌍몸이 붙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발굴 당시 선낭은 이미 없어지고 붙인 흔적만 있었다. 숙휘공주의 인장(印章)과 인궤(印櫃)가 같이 전해지고 있으며, 영인된 자료는 『이조어필언간집(李朝御筆諺簡集)』에 소개되어 있다.
『숙명신한첩』을 발굴한 김일근 교수는 두 책을 구분하기 위해 숙휘공주가에 전해온 신한첩을 ‘숙휘신한첩’이라 칭하고, 숙명공주가에 전해온 신한첩을 ‘숙명신한첩’이라 칭하였다. 학계에서도 이를 따랐다.
『숙휘신한첩』에 수록된 편지는 모두 35건으로, 효종이 보낸 편지 2건, 인선왕후가 보낸 편지 18건, 현종이 보낸 3건, 명성왕후가 보낸 편지 1건, 숙종이 보낸 편지 6건, 인현왕후가 보낸 편지 5건이다. 인선왕후 편지 가운데 앞에 수록된 2건의 편지는 장렬왕후가 보낸 편지로 밝혀졌으며, 현종이 보낸 편지 중 2건은 수신자가 숙휘공주가 아닌 인선왕후와 효종의 부마 인평위 정제현으로 밝혀졌다.
2종의 신한첩에는 조선 국왕과 왕비 6인의 친필 편지가 수록되어 있어 서예사적 가치가 높으며, 왕실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생한 구어(口語)를 반영한 한글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국어학 연구의 자료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