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경헌(景獻). 이양(李良)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번(李世蕃)이다. 아버지는 부사 이윤실(李允實)이며, 어머니는 종실 임회수(臨淮守) 이수(李樹)의 딸이다.
사마시를 거쳐, 1548년(명종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에 분관되었다. 예문검열로 있을 때 『중종실록』 편수관을 지냈고, 1552년(명종 7) 사간원정언에 제수된 뒤 평안도감군어사(平安道監軍御史)로 지방에 파견되어 수령과 백성들의 실정을 살펴보고 돌아왔다.
그 뒤 영변판관 후보에 추천되자 시종(侍從)·대간(臺諫)은 외직에 파견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의도 있었으나 곧 파견되었고, 그 이듬해 전라도평사에 제수되었다.
1557년에는 유신현감으로 재직하다 근무 성적에서 중(中)으로 매겨진 것을 분하게 여겨, 관찰사가 순찰할 때 같이 온 아전을 심하게 다루었다가 대간의 탄핵으로 파직되었고, 그 뒤 연안부사를 거쳐 장령에 제수되었다.
이어 종성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체직되었다가 곧 동부승지에 올랐다. 그 뒤 안주목사를 거쳐 선조가 즉위한 뒤에는 여주목사, 안변·인천 부사를 거쳐 임란 중에는 예조참의에 발탁되었고, 이어 한성우윤에 올랐다.
고을을 다스리는 데 유능하다는 평판이 있었으나, 아첨으로 외척세력 이량(李樑)과 윤원형(尹元衡)을 번갈아 섬겼다는 비난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