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징(士徵), 호는 귀암(歸巖). 아버지는 이도장(李道長)이며, 어머니는 김시양(金時讓)의 딸이다. 정구(鄭逑)의 문인이며, 큰 학자였던 할아버지 이윤우(李潤雨)에게도 수학하였다.
1648년(인조 26) 사마시를 거쳐 1652년(효종 3)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검열·교리를 지내고 1660년(현종 1)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이듬 해 동래부사가 되었다. 1670년 청나라에 사은부사로 다녀왔으며, 1673년 도승지, 1677년(숙종 3) 대사간·형조판서를 지냈다.
1680년 이조판서로 있을 때에 경신대출척으로 초산에 유배가던 도중에 불려와 장살당하였다. 9년 뒤인 1689년 신원되었고,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신원된 뒤에도 여러 차례 정국의 변화에 따라 추탈(追奪)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귀암문집』이 있으며, 편저에는 『경산지 京山志』가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