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덕중(德仲). 이초기(李楚奇)의 종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지성(李之星)이다. 아버지는 이인상(李寅相)이며, 어머니는 최후식(崔後寔)의 딸이다.
1717년(숙종 43) 진사(進士)의 신분으로 숙종이 윤선거(尹宣擧)와 아들 윤증(尹拯)의 관작을 추탈(追奪)하자 이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 1723년(경종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27년(영조 3) 세자시강원설서에 처음으로 부임하여, 그 뒤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을 지냈다.
1735년에는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陳香使)의 서장관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이어 사헌부헌납·사간원사간·세자시강원보덕을 역임하였으며, 1746년(영조 22)에는 문신중시(文臣重試)에서 으뜸을 차지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계하였다.
사간원정언으로 재직시에는 과조(科條)를 제정하여 채무 징수를 금지하고 등수를 나누어서 환곡을 정감(停減)할 것을 청하는 소를 올려 이의 시행을 보았으며, 과거에서 농간을 부리는 폐단을 방지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