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야(白也). 이상연(李尙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유한(李維漢)이고, 아버지는 이석령(李石岭)이며, 어머니는 황응로(黃應老)의 딸이다.
1727년(영조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29년 정언에 처음으로 부임하여 지평을 거쳐 지제교(知製校)에 뽑혔다. 1731년(영조 7) 청도군수(淸道郡守)로 근무 중 경상도암행어사 이흡(李潝)의 서계(書啓)에 탐욕스럽다는 명목으로 들었으므로 의금부에서 형문하려고 하였으나 부수찬 윤용(尹容)이 간악한 백성이나 탐욕스런 서리가 사사로운 감정을 품고 무함한 것이라는 소를 올려 겨우 무마되었다.
1735년 장령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정언·헌납·집의를 역임하였다. 정언으로 있으면서 임금에게 언로(言路)를 넓힐 것과 문자 때문에 사람을 죄 주지 말 것을 특별히 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