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사앙(士仰). 승지 이집(李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병건(李秉健)이고, 아버지는 이산중(李山重)이며, 어머니는 조겸빈(趙謙彬)의 딸이다. 참판 이해중(李海重)의 조카이다.
1772년(영조 4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78년 부교리에 처음으로 부임하여, 교리·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783년 부교리로 있으면서 불성실한 소를 올려 파직당하였으나, 다음해 부수찬에 다시 임명되어 진하사은 겸 동지사(進賀謝恩兼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1785년 통정대부로 승진하여 광주부윤(廣州府尹)과 장단부사(長湍府使)를 거쳐, 1793년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어 특히 기민(飢民) 구제에 힘썼으나 1795년 귀환하는 정사(正使)의 상구(喪柩: 장시지낼 때의 관)를 홀대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당하였다.
그 뒤 곧 경상도관찰사로 다시 등용되어서는 각종 묵은 토지의 등급을 낮추고 조세의 부담을 덜어 주어 농사를 권면하는 데 힘썼다. 1797년곤양군(昆陽郡) 봉산(封山)의 소나무 관리를 잘못한 죄로 경상도관찰사직에서 파직당하였다가 대사간으로 다시 등용되어 공조참판·충청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