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으로 목판본과 필사본 2종이 현전한다. 목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필사본은 국립중앙도서관과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목판본과 필사본의 편차에 차이가 있다.
남편 윤광연이 정일당 강씨(靜一堂 姜氏)이 생전에 남긴 글을 편집하여 1836년(헌종 2)에 간행하였으며, 이후 1926년 김석곤(金晳坤)이 중간(重刊)하였다.
권수에 윤제홍(尹濟弘)의 초간(初刊) 서문(序文)과 김창석(金昌碩)의 중간(重刊) 서문이 있고, 권말에 송치규(宋穉圭) · 윤수경(尹守慶)의 초간 발문과 김석곤(金晳坤)의 중간 발문이 있다.
시 38수, 명(銘) 5편, 서(書) 10편, 기(記) 3편, 설(說) 1편, 제발(題跋) 2편, 묘지명 · 행장(行狀) · 제문(祭文) 각 3편, 잡저(雜著) 1편, 부록으로 행장 · 묘지명 · 제문 · 뇌문 · 만장 · 이시발(二詩跋) · 필첩발(筆帖跋) · 추만소발(追挽小跋) · 전(傳) · 찬(贊)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시는 대개 학문 또는 수신(修身)에 관한 것이 많다.
「원운(原韻)」은 늙어 가는 자신을 생각하며 인생의 원리를 읊은 것이며, 「제석감음(除夕感吟)」은 51세가 되는 감회와 마음을 닦으며 남은 여생을 보내겠다는 신념을 말하고 있다. 「성경음(誠敬吟)」에서는 수신의 도리를 표현하였고, 「청추선(聽秋蟬)」에서는 초가을 매미 소리를 들으며 심란한 여심을 읊고 있다.
시의 대부분이 문사(文辭)의 수식보다는 고상한 심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서는 남편과 주고받은 서찰이 대부분이며, 그밖에 남편을 위한 대작(代作)으로 송치규에게 보낸 별지가 있다. 별지에서는 심의(深衣) · 제주(祭主) · 초반(抄飯) 등에 관한 예설을 묻고 있다.
잡저 「사기록(思嗜錄)」은 11대 시할아버지부터 시아버지까지 좋아하였던 음식을 적은 것이다.
19세기는 내외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여성 문집의 간행은 여성에게 요구된 덕목과 윤리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일당 강씨의 남편인 윤광연이 정일당 강씨의 문집을 간행한 점은 보기 드문 사례이다.
그러나 송치규의 발문은 직접 쓴 발문이 아니라 원고 요청에 대한 수락의 답서인 점, 수록된 내용 가운데 만시(挽詩)의 분량이 지나치게 많은 점, 『정일당유고』에 수록된 정일당 강씨의 시문 이외에 서문 · 발문 · 부록 · 간행자 등이 모두 남성 작자라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