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지국(持國). 참판 조방언(趙邦彦)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옥(趙玉)이고, 아버지는 조양정(趙揚庭)이며, 어머니는 임진왜란 때 칠백의사와 함께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한응성(韓應聖)의 딸이다. 공조참판을 지낸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은 그의 동생이다. 황례원(黃禮元)의 딸과 혼인하였다.
158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93년 검열·기사관·대교, 시강원설서·사서를 두루 지냈으나 1594년 사람됨이 경망하여 강관(講官)의 반열에 끼어있게 할 수 없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599년 권세가의 도움으로 형조좌랑에 재등용되었다.
평안도도사·호조좌랑·대동찰방(大同察訪)·전주판관을 역임한 다음 1605년 함종현령(咸從縣令)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한 뒤에 세금징수가 끝이 없어 온 경내에 원성과 탄식이 가득하게 되었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610년 남평현감(南平縣監)으로 있으면서 왕에게 영원토록 수를 누리라는 「백수도(百壽圖)」를 바쳐 마장(馬粧) 1부가 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