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870년(고종 7) 8월에 청녕헌(淸寧軒)과 함께 소실되어 같은해 충주목사 조병로(趙秉老)가 중건하여 관아로 사용하였던 건물이다.
이 건물의 중앙에는 ‘製錦堂’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대문에는 ‘蘂城別館(예성별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구조는 가공이 된 장대석을 2단으로 축조한 기단상에 방형주초석을 놓고 원형주를 세워 이익공(二翼工) 양식의 공포(栱包)를 구성하였는데, 앙서형상(仰舌形狀)으로 돌출된 익공의 선단에 연봉(蓮峰)이 장식되었고, 내부로는 초각(草刻)을 한 보아지[梁奉]가 돌출되어 퇴량을 받쳐주고 있어 청녕헌과 유사한 공포의 구성수법을 볼 수 있다.
또한, 창방(昌枋)으로 결구된 주간에는 좌단간을 제외한 각 간에 1구(具)씩의 화반형(花盤形)의 초각반을 배치하여 주심도리(柱心道里) 장혀[長舌]를 받쳐주고 있다.
가구(架構)는 전후 평주 사이에 양내고주(兩內高柱)를 세워 대량과 퇴량을 결구하였는데, 대량 상부에 종량을 가구하지 않고 직접 대량 상부 중앙에 동자주형(童子柱形)의 대공(臺工)을 설치하여 종도리(宗道里)를 받치고 있는 특이한 가구방식으로 굴도리[圓道里] 5량집이다.
이 제금당은 중앙 2칸 통간을 우물마루의 대청으로 하여 이용하였으며, 대청 우측 2칸은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대청 좌측 3칸은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마루방으로 각각 만들었는데 전면에는 모두 반칸씩의 툇마루를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