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6m. 1997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거대한 자연석에 새겨진 마애불이다. 마을에서는 바위가 있는 주변을 ‘절골’이라 부르는데 지금도 청자 편과 와편이 발견되고 있어 옛 사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알려진 문헌 기록은 없다.
불상은 비교적 경사가 심한 산의 정상 가까이에 있다. 머리에는 머리카락을 새기지 않았으며, 정수리에는 육계가 매우 낮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윤곽선이 분명하지 않으며 눈과 입을 크게 표현하였다. 목에 표현된 삼도(三道)에는 얼굴 윤곽선과 구분이 명확치 않다.
넓은 어깨에는 통견(通肩 :불상의 가사가 양어깨를 덮은 형식)의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는데 직사각으로 넓게 파인 이중선의 목 주름 외에 상체에는 옷주름을 표현하지 않았다.
겨드랑이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선은 급격히 줄어들어 자연스럽지 못하다. 허리 부분에는 음각선 3줄을 넣어 옷주름을 표현하였고 주름선 바로 밑의 대퇴부 양쪽에는 주머니 같은 이중의 주름선이 있다.
이러한 주름 표현은 충청남도의 아산평촌리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 1971년 지정)의 무릎 위에서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아산평촌리불상에 나타난 도식적인 옷주름을 더욱 간략화한 표현으로 보인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있으며 왼손은 아래로 내리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나 정확하지 않아 수인(手印)을 알아보기 어렵다.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는 표현하지 않았다. 대좌는 연화대좌인데 대좌의 구성 방식이나 표현 형식이 인근의 마천면에 있는 마애여래입상의 대좌와 유사하다.
높이 약 6m 정도에 이르는 대불(大佛)이지만 조각 수법이 매우 치졸할 뿐만 아니라 신체 비례라든가 윤곽선이 조화롭지 못하며 수인에 대한 이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지방 장인에 의해 제작된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