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 )

회화
작품
국가유산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정선이 금강산의 경관을 그린 진경산수화 8폭과 송대 유학자의 행적과 시문을 주제로 그린 고사인물화 8폭으로 구성된 화첩.
이칭
이칭
겸재화(謙齋畵)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정선 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鄭敾 筆 海嶽八景 및 宋儒八賢圖 畵帖)
분류
유물/일반회화/산수화/산수화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13년 02월 28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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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정선이 금강산의 경관을 그린 진경산수화 8폭과 송대 유학자의 행적과 시문을 주제로 그린 고사인물화 8폭으로 구성된 화첩.
구성 및 형식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鄭敾筆 海嶽八景 및 宋儒八賢圖 畵帖)』은 조선 후기에 활동한 문인화가 겸재(謙齋) 정선(鄭敾)이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와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 총 16폭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겸재화(謙齋畵)”라는 표제가 묵서된 능화지(菱花紙) 표지에서 좀 구멍과 얼룩이 발견되어 오랜 기간 열람되며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화첩은 진경산수화 8폭과 고사인물화 8폭만 실려 있을 뿐 제작 시기나 경위 등 관련 정보를 알려주는 제발(題跋)은 없다. 다만 화면의 매 폭에 그림의 제목과 “겸재(謙齋)”라 쓴 서명이 있고, “정(鄭)”과 “선(敾)”을 각각 새긴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다.

그림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앞부분에 실린 진경산수화 8폭은 비단 바탕에 수묵으로 그렸고 화폭의 크기는 세로 25.1㎝, 가로 19.2㎝이다. 모두 금강산의 경관을 담고 있으며, 단발령(斷髮嶺), 비로봉(毘盧峰), 혈망봉(穴望峰), 구룡연(九龍淵), 옹천(甕遷), 고성문암(高城門岩), 총석정(叢石亭), 해금강(海金剛) 순이다. 이어지는 고사인물화 8폭은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고 화면의 규격은 세로 30.3㎝, 가로 20.3㎝이다. 각 장면의 내용은 중국 송대(宋代) 유학자 8명의 행적 혹은 시문(詩文)과 관련을 맺는다. 순서대로 열거하면, 염계상련(濂溪賞蓮), 방화수류(傍花隨柳), 부강풍도(涪江風濤), 화외소거(花外小車), 횡거영초(橫渠詠蕉), 온공낙원(溫公樂園), 무이도가(武夷棹歌), 자헌잠농(柘軒蠶農)이다.

내용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에 실린 그림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진경산수화 8폭은 모두 정선이 1711년(숙종 37) 처음 금강산을 유람한 이후 말년까지 반복적으로 제작한 금강산도이다. 첫 장에 실린 「단발령」은 한양을 떠나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거쳤던 고갯마루와 그 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금강산의 모습을 담고 있다. 「비로봉」은 금강산의 최고봉(最高峰)을, 「혈망봉」은 내금강(內金剛) 망군대(望軍臺) 구역에 자리한 바위 봉우리를 근접 포착한 것이다. 「구룡연」은 외금강(外金剛)의 명소인 구룡폭포를, 「옹천」은 동해변에 우뚝 솟은 독 모양의 둥근 바위벼랑을, 그리고 「고성문암」은 고성에 있는 문 형상의 바위에서 일출을 감상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총석정」은 통천의 바닷가에 서있는 주상절리(柱狀節理)의 돌기둥 무더기와 절벽 위의 정자를, 「해금강」은 말 그대로 해금강 구역의 경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나머지 고사인물화 8폭도 정선이 여러 차례 그렸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염계상련」은 만년에 여산(廬山)에 염계서당(濂溪書堂)을 짓고 살았던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애련설(愛蓮說)」에서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 상찬한 일화와 관련된다. 「방화수류」는 명도(明道) 정호(程顥, 10321085)의 시 「우성(偶成)」의 한 구절을 화제로 쓴 것이다. 「부강풍도」에는 이천(伊川) 정이(程頤, 10331107)가 배를 타고 유배 가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났는데, 두려움에 떨었던 동승자들과 달리 의연한 자세를 유지했다는 고사를 재현하였다. 「화외소거」는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이 낙중(洛中)에 은거할 때 소요부(邵堯夫), 즉 소옹(邵雍, 10111077)을 기다리며 쓴 시 중 “수풀 속 높은 누각 기다린 지 오래건만/ 꽃 밖의 작은 수레 아직도 오지 않네(林間高閣望已久 花外小車猶未來)”라는 구절을 화제로 삼았다. 「횡거영초」는 파초를 좋아했던 횡거(橫渠) 장재(張載, 10201077)가 주인공이며, 「온공낙원」에는 송대 재상으로 봉해진 온국공(溫國公) 사마광이 낙양에 독락원(獨樂園)을 짓고 은거했던 이야기를 담았다. 「무이도가」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회암(晦菴) 주희(朱熹, 11301200)가 무이산에 은거했던 행적과 연계되며, 「자헌잠농」은 이동(李侗, 10931163)이 농사짓고 누에치는 일의 중요성을 읊은 시 「자헌(柘軒)」이 모티프이다.

의의와 평가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에는 각각 금강산과 송대 유학자라는 공통분모를 토대로 8폭씩 그린 그림이 묶여 있다. 그러나 진경산수화와 고사인물화에 적용된 화풍이 서로 달라서 일시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또한 적지 않은 작품 수나 내용상의 특징은 제작 경위나 제작 시기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금강산도의 대담한 구도와 거침없는 필치, 서명과 인장 등을 참조할 때 1740년대 이후 말년에 제작했을 가능성이 엿보일 뿐이다.

한편 고사인물화 8폭은 주인공 인물을 산수 배경과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정선식(鄭敾式) 고사인물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인물의 옷주름 표현에 가는 먹 선을 사용한 점은 금강산도와 마찬가지로 정선의 노년기 인물화법에 가깝다. 조선시대 고사인물화가 대개 중국 성현과 은자들을 광범하게 포괄하는 양상과 달리 정선이 송대 유학자에 국한시켜 그린 점은 이례적이다. 이는 평소 정선을 후원했던 주변 문인들의 이념적 지향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은 정선의 회화세계는 물론 조선 후기 산수화와 인물화의 제작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사인심취』(용인대학교박물관, 2010)
「겸재 정선의 『겸재화』화첩 내 진경산수화 연구」(이원복, 『단호문화연구』13, 용인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2010)
「정선의 『겸재화』화첩 중 고사인물을 주제로 한 그림」(조인수, 『단호문화연구』13, 용인대학교 전통문화연구소, 2010)
「정선의 고사인물화」(민길홍, 『미술사의 정립과 확산』1, 사회평론,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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