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최송설당은 영친왕의 보모였다가 김천으로 귀향한 후, 1931년에 사재를 털어 김천고보를 설립한 인물이다. 또 『송설당집(松雪堂集)』을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현재 김천중 · 고등학교 최송설당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최송설당상」은 1950년 6월에 윤효중이 제작한 것으로, 1935년에 김복진이 제작했던 최송설당의 동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나 민영휘(閔泳徽) 등 학교설립자 동상이 적잖이 건립되었지만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은 일제에 의해 공출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사라진 동상들이 재건립되었지만 원래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그나마도 6∙25전쟁 동안 다시 파손되었다. 윤효중의 「최송설당상」은 김복진이 제작한 동상의 사진을 토대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1950년 6월에 제막식을 연 이후 전쟁 동안에도 잘 보존된 덕분에, 1950년대 우리나라의 동상제작 기술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현존하는 실물 크기 동상으로는 가장 오래된 동상이기도 하다.
1935년에 건립된 「최송설당상」은 한국 최초로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조각과를 졸업한 김복진이 처음으로 제작한 동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김복진의 「수륙일천리」라는 글에 따르면, 김복진이 출옥한 후 최송설당의 동상 제작의뢰를 받고 김천에 내려가 최송설당을 직접 만나보았으며, 실제 동상의 원형을 제작할 때는 사진을 참조했다고 한다. 김복진의 이 동상은 사라졌으나, 윤효중은 「최송설당상」을 원래의 상에 최대한 가깝게 재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동상은 2011년에 김천중 · 고등학교 교내에 있는 최송설당기념관으로 옮겨졌으며, 현재 교정에 건립되어 있는 동상은 윤효중이 제작했던 동상의 복제품이다. 단, 이 동상의 좌대는 1935년에 건립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