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사 극락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넓적한 얼굴과 각진 턱을 가진 불상으로, 17세기 초반에 가장 활발하게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 현진(玄眞)의 작풍을 보이고 있다. 현진이 조성한 불상은 초기에는 좁고 예리한 얼굴이었으나, 안국사 불상처럼 넓적하고 순박한 표정의 얼굴로 변하여 30년대까지 이어졌다. 신체는 두꺼운 옷으로 가려져 있지만, 거대하고 중량감이 느껴진다. 오른쪽 어깨와 가슴을 가리고 있는 부견의(覆肩衣)는 아래로 늘어져 복부 중앙에서 대의 속에 삽입되었는데, 삽입되기 직전의 주름이 급하게 꺾인 점도 다른 조각가들이 제작한 불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현진 작품만의 특징이다. 대의는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와 복부를 가로지른 후 왼쪽 어깨 너머 등으로 넘겨져 마무리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왼쪽 어깨 측면으로 자연스럽게 옷자락이 늘어지게 표현하였다. 현진이 만든 불보살상에서는 왼쪽 어깨 아래로 늘어진 대의 자락의 주름이 중앙으로 넓게 흘러내려 ‘U’ 자 모양을 이룬 무늬의 좌우에 끝부분이 동그랗게 말린 좁고 긴 주름이 합쳐진 독특한 주름을 이루고 있다. 좌우의 두 주름이 완전히 남아 있는 왼쪽 어깨 아래의 옷주름, 넓적한 본존불의 얼굴, 두 다리 사이의 대의 옷주름 표현 등은 1629년에 제작된 대구 동화사 극락전 목조아미타불좌상이나 창녕 관룡사 대웅전의 목조석가불좌상과 동일하다. 따라서 안국사 극락전의 삼존불상도 이들 불상과 비슷한 시기인 1620년대 말에서 1630년대 초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불상을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현진은 청헌(淸憲) · 승일(勝日) · 응혜(應惠) · 희장(熙藏) 등 17세기 영 · 호남 조각계의 중심에서 활동한 조각승들을 길러냈는데 이들의 유맥은 18세기의 도잠(道岑) · 진열(進悅)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