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53㎝, 가로 109.5㎝.불교의 천도재(薦度齋) 중 하나인 현왕재(現王齋)의 회주(會主) 현왕(現王)과 그 권속을 그린 현왕도로서, 1893년에 금호 약효(錦湖 若效)를 수화승으로 하여 금화 기형(錦華 機炯), 경흡(景洽)이 함께 조성하였다. 화면 중앙에 현왕이 의좌(倚坐)하고 좌우에 판관(判官), 녹사(錄事), 사자(使者), 장군 등을 배치하였으며, 현왕의 주요 권속인 대륜성왕(大輪聖王)과 전륜성왕(轉輪聖王)이 표현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필기도구가 가득 놓인 탁자를 앞에 두고 앉아있는 현왕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이 현왕을 에워싸듯 협시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현왕은 경전을 올려놓은 책관(冊冠)을 쓰고 붉은 관복에 각대(角帶)를 차고 호피(虎皮)를 두른 의자 위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데, 왼손은 무릎 위에 편안하게 대고 오른손에는 붓을 들고 있어 심판을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19세기 후반 서울 · 경기 지역에서 유행한 전형적인 현왕의 모습이다.
현왕 앞에는 5명의 판관과 녹사가 두루마리를 들거나 펼쳐놓고 무엇인가를 보고하는 모습으로 서있다. 이들 뒤로는 명부(名簿)를 든 사자와 공양물과 위의(威儀)를 들고 있는 공양천인, 합장한 동자 등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화면 가장 앞쪽으로는 칼과 명부 등을 들고 있는 장군 2구가 큼직하게 묘사되었다. 그리 크지 않은 화면에 많은 인물들을 표현하면서도 배치의 묘를 잘 살림으로써 화면이 빡빡하지 않고 여유가 있어 보이며, 위로 올라갈수록 인물들을 작게 표현함으로써 중앙의 현왕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효과를 준다.
1893년에 마곡사 화파의 대표적 화승인 금호 약효(錦湖 若效)를 수화승으로 하여 조성한 현왕도로서, 19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서울 · 경기 지역 현왕도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장군을 앞으로 부각시켜 큼직하게 표현한 점이라든가 많은 인물을 효과적으로 배치한 기법 등은 약효만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