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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정계비(高麗定界碑)

    고려시대사유적

     공험진 선춘령에 있는 고려전기 국경을 표시하기 위해 세운 정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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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고려정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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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
    고려비, 윤관비
    분야
    고려시대사
    유형
    유적
    성격
    정계비
    건립시기
    1108년(예종 3)
    소재지
    공험진 선춘령
    시대
    고려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공험진 선춘령에 있는 고려전기 국경을 표시하기 위해 세운 정계비.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예종 때 윤관(尹瓘) 등이 동북여진을 축출하고 9성을 쌓고, 9성의 하나인 공험진에 비를 세워 고려의 계한(界限)으로 삼았다. 고려정계비·고려비(高麗碑) 또는 윤관비(尹瓘碑)라고도 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1108년(예종 3) 2월 무신(戊申)에 비를 세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비문의 내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세종실록지리지』 경원도호부(慶源都護府)의 내용을 보면, “공험진의 선춘령은 윤관이 비를 세운 곳이다. (본래) 비석 네 면에는 모두 글자가 있었던 것을 언젠가 호인(胡人)이 그 글자를 뭉개버렸다. 뒷날 어떤 사람이 그 비석 뿌리를 파내보니 ‘高麗之境(고려지경)’의 네자만이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정계비까지의 노정은, 경원도호부의 동림성(東林城)을 출발해 북쪽으로 5리쯤에 소다로영터〔所多老營基〕, 그곳에서 북쪽으로 30리에 회질가탄(會叱家灘), 그곳에서 강을 건너 10리에 현성(縣城), 그곳에서 북쪽 90리에 어라손참(於羅孫站), 그곳에서 북쪽 30리에 허을손참(虛乙孫站), 그곳에서 동북쪽 60리에 유선참(留善站), 그곳에서 동북쪽 70리에 거양성(巨陽城), 그곳에서 서쪽으로 60리에 선춘현(先春峴)이 있다.
    17세기 이래 실학자들은 마운령의 진흥왕순수비를 윤관비(고려정계비)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윤관의 개척지역 범위를 길주 이남에 한정된 것으로 이해하였고, 윤관비도 그 이남에서 찾았기 때문이었다. 17세기 초 한백겸(韓百謙)은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에서 “마운령 꼭대기의 석추구기(石樞舊基)는 윤관비가 아닐는지?”라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의 의문제기는 유형원(柳馨遠)·신경준(申景濬)·윤정기(尹廷琦) 등에 이르러 윤관비로 고정되고 말았다.
    그 뒤 1930년 최남선(崔南善)에 의해 신라 진흥왕순수비라는 것이 밝혀지기까지 300여 년 동안 윤관비로 믿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1931년 일본인학자 마에마(前間恭作)는 이 비를 가리켜, 모조품이거나 원산만 이남에 소재하는 진흥왕순수비를 마운령 꼭대기에 옮겨놓은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반론을 내놓기도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방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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