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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歸鄕)

고려시대사제도

 고려시대 윤형(閏刑) 및 정형(正刑)으로 구분해 과한 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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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고려시대사
유형
제도
성격
법제, 형벌
시행시기
고려시대
시대
고려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시대 윤형(閏刑) 및 정형(正刑)으로 구분해 과한 형벌.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당나라·송나라 등의 중국 법률규정에는 없는 고려의 독자적인 형벌로, 유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즉, 특수층의 범죄행위에 대한 일종의 우대조처로 실시된 윤형으로서의 제1유형의 귀향과, 정형으로서 관료 및 노비에 이르는 다양한 계층과 각종 범죄행위에 적용된 법제용어였던 제2유형의 귀향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제1유형
제1유형에서의 귀향은 ‘본관(本貫)으로 돌려보낸다.’는 일반적 의미로 풀이된다. 처벌대상은 녹(祿)을 받는 관리가 스스로 공물을 훔쳤거나 뇌물을 받은 경우, 승려가 소속사원의 미곡(米穀)을 훔친 경우 등에 적용되었다.
처벌방법은 율(律)에 의해 죄를 부과하는 정형 대신 제명(除名) 및 직전(職田)을 몰수해 관리로서의 지위와 특권을 박탈, 자기의 본관으로 돌려보냈다. 따라서, 이 귀향형은 특수층에 대한 일종의 우대조처였으며, 이 점에서 당나라의 윤형제(閏刑制)와 비슷하다.
고려에서 이러한 조처가 형벌로서 성립될 수 있었던 배경은, 고려 전기에 국가권력에 의한 토지지배가 행해져 관인의 사적(私的) 권력의 성장이 억제되고, 왕도(王都)에 모여 국가로부터 토지수익의 분배를 받아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왕도에서의 방축(放逐)은 그들의 생활수단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려 중기 이후 관료의 토지 사유가 보편화되고, 관인 가운데 향리로 돌아가 생활을 영위하는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 지방에 농장(農莊)을 기초로 하는 지주적 관인층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지방의 대토지를 소유한 양반사회의 성립은 종전과 같이 형벌의 의미를 상실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고려 말에 이르면 적용사례는 아주 적어져 소멸되어갔다.
영역닫기영역열기제2유형
제2유형의 귀향은 고려 군현제(郡縣制)에서 군현의 하부행정구획인 ‘향(鄕)으로 귀배(歸配)한다.’는 특정의 의미와 내용을 가진 법제용어였다. 물론 이때 향과 유사성을 가졌던 부곡(部曲)도 귀향의 대상지역이 되었다.
이 귀향형은 이보다 한 단계 무거운 형벌인 ‘상호(常戶)에 충(充)한다.’는 충상호형(充常戶刑)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여기에 해당하는 범죄는, 공사(公私)의 노비가 유망민이나 양민의 자녀 등을 매매했을 경우, 조정의 명령을 빙자해 임의로 직(職)을 수여한 경우, 간음 따위의 악역죄(惡役罪)를 범한 경우 등 국가에 대한 모반 이하 다양한 범죄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처벌대상은 제1유형에 해당하는 관료나 승려 등의 특수층뿐만 아니라 일반양민, 양계(兩界)의 진인(鎭人), 공·사노비 등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형벌방법은 전정수급자(田丁受給者)인 경우, 정전(丁田)을 몰수한 뒤 향 또는 부곡으로 보내었다.
그러나 사면이 있을 때 그 적용대상이 되어 먼 곳으로 귀향 간 사람을 가까운 곳으로 옮김으로써 향·부곡에서 이탈할 수도 있었다.
반면 충상호형은 얼굴에 입묵(入墨)을 가한 뒤 향으로 보내는데 그치지 않고, 해당자를 향의 호적에 등록함으로써 신분적 강등을 꾀해, 사면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종의 종신형(終身刑)이었다. 이 귀향의 큰 특색은 고려 군현제에서 특징적인 존재였던 향·부곡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역사적 추이도 향·부곡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군현의 하부행정기구로서 향·부곡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존재했으며, 고려 초기 군현제의 정비과정에서 확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12세기 이후 지배체제 정비작업의 하나로 군현제도의 개편을 추진하자, 향·부곡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신분과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이에 따라 현으로의 승격, 군현에의 흡수 등으로 점차 소멸되기에 이르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확인된 고려시대의 향·부곡은 8백여 개에 달했으나, 조선 초기에 이르면 속현(屬縣)으로 취급된 11개의 향·부곡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고려 초기부터 12세기까지 중형(重刑)으로 부과되었던 귀향형도 향·부곡의 변질에 따라 점차 형벌로서의 실질적인 의미를 잃고 소멸되어갔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고려시대의 귀향은 두 가지 상이한 내용을 갖는 형벌로서, 시기적·기능적으로 고려사회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문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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