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전서』에 이황이 1556년(명종 11) 이후 남언경에게 보낸 답서(答書) 9통이 있고, 별지 「정재기(靜齋記)」에는 남언경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어 남언경의 학문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
남언경은 우주의 본질과 현상작용을 모두 기(氣)로써 설명하고 기의 영원성을 주장하였으며, 그 선천성과 후천성을 구별하면서도 그 저변에 일기(一氣)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이(理)란 기(氣)의 동정취산(動靜聚散)에 따른 법칙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는 기를 초월할 수도 없고 초월적 실재성(實在性)도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하여, 기는 유한하고 이는 무한하다는 이황의 주장을 반박하고 스승 서경덕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남언경의 논설 중에서 “맑고 유일(唯一)하며 밝은 본체는 위·아래, 하늘·땅과 함께 흐른다.”라고 한 주장은 곧 “양지(良知)의 묘용(妙容)이 발생할 때 인심(人心)·하늘·땅이 모두 일체임을 알 것이다.”라고 한 왕양명(王陽明)의 설과 일치하며, 서경덕의 기불멸설(氣不滅說)과도 상통한다.
인간의 심성(心性)에 대한 해석에서는 이황이 이(理), 즉 본연의 성(性)은 순선무악(純善無惡)한 것이라 하여 이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데 반해, 그는 우주는 기이며 마음도 기이므로 도덕적으로 선과 악이 함께 있음을 주장하였다.
남언경은 진백사(陳白沙)와 왕양명의 『전습록(傳習錄)』을 탐독하였고, 그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 최초의 양명학자가 되었다. 후에 이를 전승한 정제두(鄭齊斗)는 “선과 악을 논하지 않고서 고요할 때는 모두 이가 되고, 움직일 때는 모두 기가 된다고 한다면 기를 어찌 동(動)과 정(靜)으로써 한정할 것이며 움직일 때는 인욕(人欲), 고요할 때는 천리(天理)라고 할 것인가.”라고 하여 이황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반박하고 양명학의 사상적 체계를 완성시켰다. 문하로는 이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