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1년(명종 6)에 태어났으며, 경상우도 초계(草溪) 출신이다. 본관은 신창(新昌), 자는 자협(子協), 호는 매와(梅窩)이다. 남명 조식(曺植)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4월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은 함양에서 전(前) 현령 조종도(趙宗道)와 전 직장 이로(李魯)를 통해 도내에 초유문(招諭文)을 지어 반포하였다. 이로는 삼가(三嘉,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 지역)로 들어가 황계(黃溪)에 숨어 있던 삼가현감 장령(張翎)을 불러냈다.
노순도 김성일이 보낸 초유문을 읽고 향리의 동지 박사제(朴思齋), 박사겸(朴思兼), 윤언례(尹彦禮), 윤탁(尹鐸), 윤선(尹銑), 정질(鄭晊), 허자대(許子大) 등과 정금당(淨襟堂)에서 회합을 갖고 창의하였다.
노순과 박사제 등은 삼가에서 의병을 일의켜서 800~900명의 병사를 모았다. 이후 노순 등은 의령에서 창의한 곽재우의 의병에 합세하였다. 삼가에서 창의한 의병장들이 곽재우의 부대에 합류하면서 조직과 군세가 더욱 강화되었다. 곽재우는 윤탁을 삼가대장, 박사제를 도총(道總)으로 삼았다. 허자대는 군기 제조를 담당하였고, 노순은 군량 조달을 맡았다. 1595년 영변부사(寧邊府使)에 제수되었다. 1595년(선조 28) 5월 초7일 사제에서 향년 45세로 사망하였다.
평안북도 영변에 있는 상음원(霜陰院)에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