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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

불교문헌

 고려후기 승려 일연이 고조선에서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遺事)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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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승려 일연이 고조선에서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遺事)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
영역닫기영역열기편찬/발간 경위
5권. 목판본.
일연이 이 책의 저술을 위하여 사료를 수집한 것은 청년시절부터였고, 그 원고의 집필은 대개 70대 후반으로부터 84세로 죽기까지 주로 만년에 이루어졌다.
저자 일연에 의한 초간본의 간행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제자 무극(無極)이 1310년대에 『삼국유사』를 간행하였는데, 이때 그가 첨가한 기록이 두 곳에 있다. ‘무극기(無極記)’라고 표한 것이 그것이다. 무극의 간행이 초간인지 중간인지 분명하지 않다.
조선 초기에도 『삼국유사』의 간행이 행하여진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이 시기 고판본의 인본(印本)인 석남본(石南本)과 송은본(松隱本)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보물 제419호로 지정된 송은본은 현재 곽영대(郭永大)가 소장하고 있다. 이 본은 3·4·5권만 있는데, 권3의 첫 6장까지와 권5의 끝부분 4장이 없는 잔본이다.
석남본은 1940년부터 송석하(宋錫夏)가 소장하였던 것으로 왕력(王歷)과 제1권만 남은 잔본으로 소장처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석남본 및 송은본을 모사한 필사본이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는 1940년 이후 몇 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다.
1512년(중종 7) 경주부윤 이계복(李繼福)이 중간한 『삼국유사』는 중종임신본(中宗壬申本) 또는 정덕본(正德本)이라고 한다. 이 본의 권말에는 중간 경위를 밝힌 이계복의 발문이 붙어 있다. 이 발문에 의하면, 당시 경주부에는 옛 책판(冊板)이 보관되어 있었지만, 1행 중 겨우 4, 5자를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마멸이 심하였다. 이계복은 완전한 인본을 구해서 책판을 개간하였다.
발문에는 당시에 전 책판을 개간한 것처럼 되어 있지만, 전체 책판 290매 중 약 40매는 구각판(舊刻板)을 그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다시 새겼다. 다시 새긴 판에 각자(刻字)의 양식이 다른 것들이 많음은 각 고을에 나누어 새긴 탓이기도 하고, 개각판은 복각(覆刻)과 필서보각(筆書補刻)의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정을 담당하였던 최기동(崔起潼)·이산보(李山甫)의 교정능력이 의심스럽다.
이계복이 중간한 책판은 19세기 중반까지 경주부에 보존되었지만, 전하지 않는다. 중종임신본을 인행(印行)한 몇 종의 간행본이 현재 국내외에 전한다. 5권이 갖추어진 완본인 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은 이계복이 판각한 뒤 32년 이내에 인출된 것으로, 훗날 순암안정복(安鼎福)이 소장하면서 가필을 한 때문에 이와 같이 불린다. 이 본은 이마니시[今西龍]가 1916년부터 소장하였는데(일인들은 흔히 今西本이라 칭한다), 일본의 덴리대학[天理大學] 도서관의 귀중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서울대학교본은 완본이지만 약간의 가필이 있다.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본은 초기의 임신고인본으로 평가되고 가필과 가획이 없어 원형에 가까운 귀중본이다. 이 밖에도 중종임신본은 몇 가지 더 전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삼국유사』는 전체 5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권과는 별도로 왕력(王歷)·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 등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력은 삼국·가락국·후고구려·후백제 등의 간략한 연표이다. 기이편은 고조선으로부터 후삼국까지의 단편적인 역사를 57항목으로 서술하였는데, 1·2권에 계속된다. 기이편의 서두에는 이 편을 설정하는 연유를 밝힌 서(敍)가 붙어 있다.
흥법편에는 삼국의 불교수용과 그 융성에 관한 6항목, 탑상편에는 탑과 불상에 관한 사실 31항목, 의해편에는 원광서학조(圓光西學條)를 비롯한 신라의 고승들에 대한 전기를 중심으로 하는 14항목, 신주편에는 신라의 밀교적 신이승(神異僧)들에 대한 3항목, 감통편에는 신앙의 영이감응(靈異感應)에 관한 10항목, 피은편에는 초탈고일(超脫高逸)한 인물의 행적 10항목, 효선편에는 부모에 대한 효도와 불교적인 선행에 대한 미담 5항목을 각각 수록하였다.
이처럼 5권 9편 144항목으로 구성된 『삼국유사』의 체재는 『삼국사기』나 『해동고승전』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중국의 세 가지 고승전(高僧傳)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것과도 다른 체재이다. 『삼국유사』가 고려 후기의 전적에 인용된 예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선 초기 이후에 이루어진 여러 문헌에서는 이 책의 인용이 확인된다. 조선 초기 이후 이 책이 두루 유포되어 참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동국여지승람』으로부터 『동사강목』에 이르기까지 허황하여 믿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평가로 일관되었다.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조선 초기 이후의 많은 역사책에 인용되었고 영향을 주었다. 최근 이 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대두되면서 그 간행과 유통 또한 활발해졌다.
현재 간행, 유포되고 있는 『삼국유사』는 여러 종류로 영인본·활판본·번역본 등이 있다. 1926년 순암수택본을 축소, 영인하여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문학부총서 제6으로 간행하였고, 고전간행회에서 1932년 순암수택본을 원래의 크기로 영인, 한장본 2책으로 간행하였다. 1964년 일본의 가쿠슈원동양문화연구소[學習院東洋文化硏究所]에서 고전간행회영인본을 축소, 재영인하기도 하였다.
민족문화추진회에서는 1973년 서울대학교 소장본을 반으로 축소, 영인하였는데, 이동환(李東歡)의 교감을 두주(頭註)로 붙이고, 「균여전(均如傳)」 및 「황룡사구층탑찰주본기」를 부록으로 덧붙인 양장본이다.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1983년 만송문고본(晩松文庫本)을 축소, 영인하였다. 부록으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소장 필사본, 즉 석남본 및 송은본의 모사본을 영인하여 수록하였다.
활자본으로는 동대본(東大本, 東京帝國大學 문학부, 1904)·속장경본(續藏經本, 동대본을 정정하여 속장경 지나찬술부 사전부에 수록)·계명본(啓明本, 崔南善 교정, 啓明 제18호, 1927)·신증본(新增本, 최남선, 三中堂, 1943·1946)·증보본(增補本, 민중서관, 1954)·대정신수대장경본(大正新修大藏經本, 1927)·조선사학회본(1928)·한국불교전서본(韓國佛敎全書本, 동국대학교 출판부, 한국불교전서 제6책에 수록, 1984) 등이 있다.
『삼국유사』의 번역본으로는 국역본·일역본·영역본 등이 있다. 국역본으로는 사서연역회번역본(고려문화사, 1946)·완역삼국유사(고전연역회 이종렬 책임번역, 학우사, 1954)·원문병역주삼국유사(李丙燾 譯, 동국문화사, 1956)·수정판역주병원문삼국유사(이병도 역주, 廣曺出版社, 1977)·한국명저대전집본(이병도 역, 大洋書籍, 1972)·조선과학원번역본(북한에서 1960년 번역)·세계고전전집본(李載浩 譯註, 광문출판사, 1967)·세계사상교양전집본(李民樹 譯, 乙酉文化社, 1975)·권상로역해본(權相老 譯解本, 東西文化社, 1978)·성은구역주본(成殷九 譯註本, 전남대학교 출판부, 1981)·역해삼국유사(박성봉·고경식 역, 서문문화사, 1985)·삼중당문고본(李東歡 역주, 1975)·삼성문화문고본(이민수 역, 1979) 등이 있다.
일어번역본으로는, 원문화역대조삼국유사·초역삼국유사·국역일체경본·임영수(林英樹) 역본·완역삼국유사(金思燁 역, 朝日新聞社, 1979) 등이 있다. 1972년 연세대학교에서 영역본삼국유사를 간행하였다.
『삼국유사』의 주석서로는 미지나[三品彰英]의 『삼국유사고증』 상·중 2책이 있다. 색인으로는 이홍직(李弘稙)이 『역사학보』 5집에 발표한 것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간행한 『삼국유사색인』이 있다. 이홍직이 작성한 것은 최남선의 『증보삼국유사』의 부록으로 소개되기도 하였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작성한 색인은 주제별 및 가나다 색인이다.
『삼국유사』의 체재는 정사(正史)인 『삼국사기』와 다를 뿐 아니라 불교사서인 『해동고승전』과도 다르다. 이 책의 체재를 10과(科)로 분류한 중국의 세 가지 고승전의 경우와 비슷한 듯하지만, 왕력·기이·효선 등 중국 고승전의 선례와 다른 것도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의 역사 전반에 관한 사서로 편찬된 것은 아니다. 또한, 삼국의 불교사 전반을 포괄하지도 못하였다. 저자의 관심을 끈 자료들을 선택적으로 수집, 분류한 자유로운 형식의 역사서이다.
이 책의 성격에 대해서도, 불교사서, 설화집성집, 불교신앙을 포함하는 역사에 관한 문헌, 잡록적 사서, 야사 등 많은 견해들이 있다. 이 책의 내용에는 불교사적인 것이 많지만, 순수한 불교사서로 보기는 어려우며, 많은 설화를 수록하고는 있지만, 간단히 설화집으로 평가하기도 어렵다. 저자가 서명(書名)을 통하여 밝히고 있듯이, 『삼국유사』는 사가의 기록에서 빠졌거나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어 표현한 것이다.
이 사서가 정사가 아니라고 해서 만록(漫錄) 정도로 취급하기는 어렵다. 이 책에는 저자의 각고의 노력과 강한 역사의식이 스며 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신이(神異)한 사화(史話)가 많음이 흔히 지적된다. 이는 역사에 반영된 신이가 하등 기이할 것이 없다는 일연의 역사인식과 많은 사료를 수집, 전거를 밝혀 인용하고 고대사료의 원형 전달을 도모한 역사서술방법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연의 역사인식과 서술태도는 유교적 역사관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사학사적인 위치에 대해서, 『삼국사기』에 비하여 복고적이라거나 진보적이라는 상반된 견해도 있다. 찬술동기나 서술체재가 서로 다른 두 사서의 직접적인 비교는 바람직하지 않고, 또 『삼국유사』의 역사서술 방법론에 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늘날 『삼국유사』는 한국고대의 역사·지리·문학·종교·언어·민속·사상·미술·고고학 등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에는 역사·불교·설화 등에 관한 서적과 문집류, 고기(古記)·사지(寺誌)·비갈(碑喝)·안첩(按牒) 등의 고문적(古文籍)에 이르는 많은 문헌이 인용되었다. 특히, 지금은 전하지 않는 문헌들이 많이 인용되었기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삼국유사』는 신화와 설화의 보고이다. 또한, 차자표기(借字表記)로 된 자료인 향가, 서기체(誓記體)의 기록, 이두(吏讀)로 된 비문류, 전적에 전하는 지명 및 인명의 표기 등은 한국고대어 연구의 귀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이 전해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 최대로 꼽히는 것의 하나는 향가이다. 14수의 향가는 우리 나라 고대문학연구의 값진 자료이다.
『삼국유사』는 또한 한국고대미술의 주류인 불교미술연구를 위한 가장 오래된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 탑상편의 기사는 탑·불상·사원건축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싣고 있다. 이 책은 역사고고학의 대상이 되는 유물·유적, 특히 불교의 유물·유적을 조사·연구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문헌으로 꼽힌다.
『삼국유사』는 풍류도(風流道)를 수행하던 화랑과 낭도들에 관한 자료를 상당히 전해주고 있다. 이 자료들은 종교적이고 풍류적인 성격을 많이 내포하고 있어서 주목된다. 『삼국사기』 화랑관계 기사와는 다른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저자 일연의 찬(讚)이 있어 그의 시문학이나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다.
『삼국유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도 적지 않다. 이 책의 체재, 즉 권차(卷次)·편목(篇目)·항목 등에는 약간의 혼란이 있다. 본문 또한 오자(誤字)·탈자(脫字)·궐자(厥字)·중문(重文)·혼효(混淆)·전도(顚倒) 등으로 인한 변화도 있다. 정밀한 교감이 요구된다. 고대사료가 가진 애매성이나 신이한 설화의 문제도 있다. 역사·문학·종교 등 종합적인 연구와 자세한 주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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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1996년)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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