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실록 ()

조선왕조실록 / 세조실록 표지
조선왕조실록 / 세조실록 표지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
이칭
이칭
세조혜장대왕실록(世祖惠莊大王實錄)
내용 요약

『세조실록』은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세조혜장대왕실록(世祖惠莊大王實錄)’이다. 1455년(세조 즉위) 윤6월 11일부터 1468년(세조 14) 11월 28일까지 세조 재위 약 14년간의 국정 전반에 관한 역사를 싣고 있다.

정의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
서지사항

49권 18책. 인본(印本).

편찬 및 간행 경위

『세조실록』의 편찬은 세조가 승하한 다음 해인 1469년 4월 1일 춘추관실록청을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 육방(六房)으로 나누어서 편찬하였으나, 그해 11월 예종이 승하하고 성종이 즉위하자 육방을 3방으로 줄이고 편찬을 계속하여 2년 후인 1471년(성종 2) 12월 15일에 완성하였다. 이어 『예종실록』을 편찬하고, 1473년(성종 4) 6월 8일에 『세종실록』 · 『문종실록』과 함께 『세조실록』 · 『예종실록』도 인쇄하였다.

1466년(세조 12) 양성지의 건의로 새로 주조한 소활자로 『세종실록』 · 『문종실록』을 인쇄하기 시작하여 1472년(성종 3) 7월에 완료하였다. 새로 편찬한 『세조실록』 · 『예종실록』도 인쇄하여 1473년(성종 4) 6월에 출판을 완료하였다. 이때 각기 3부씩 인쇄하여 사본인 정초본(正草本)은 춘추관 실록각에, 인본은 충주 · 성주 · 전주 사고에 1부씩 분장하였다. 예종 원년 4월 초에 『세조실록』의 초권(初卷)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른바 ‘ 민수사옥(閔粹史獄)’이 일어나 실록 편찬은 큰 진통을 겪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실록 편찬을 위해 사초를 거둘 때 사관의 이름을 쓰게 한 것이었다. 대간은 사초에 서명하는 것을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사관이 소신대로 기록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었다. 민수는 사관으로 있을 때 대신들의 잘못을 사초에 많이 기록했는데, 자기의 이름을 밝히게 되자 춘추관에 제출한 사초를 몰래 빼내 여러 군데를 고쳤다. 이것이 발각되어 민수를 제주 주2로 삼고, 사관의 서명에 반대했던 대간 두 사람을 참형에 처했다. 그리고 다른 관련자 두 사람은 충군(充軍)하였다. 그 뒤에 실록의 편찬이 계속되었으나, 1469년 11월 예종이 사망하자 성종이 계승하였다. 성종은 즉위 직후인 12월 초에 육방(房), 즉 육조(組)로 나누어 편찬하던 것을 3방으로 바꾸어 추진하였고, 1471년 12월 15일에 완성되었다.

편찬관 및 특징

『세조실록』 편찬 시 영관사로 신숙주한명회, 감관사로  최항, 주3강희맹양성지, 주4이승소 등 5명, 수찬관으로 김지경 등 3명, 편수관으로 김유 등 15명, 주5으로 노공필 등 11명, 주6으로 김윤종 등 24명 모두 63명이 참여하였다.

『세조실록』은 조선 초기의 다른 실록과 같이, 당시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다. 세조의 왕위 찬탈 과정을 수록한 『단종실록』이 사실의 왜곡이 많은 것에 비해, 세조 즉위 이후의 일을 기록한 『세조실록』은 대체로 사실에 입각해서 기록하였다.

구성과 내용

『세조실록』은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재위 기간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이다. 정식 명칭은 ‘세조혜장대왕실록(世祖惠莊大王實錄)’이다. 본문은 47권이며 말미에 편수관 명단을 수록하였다. 끝의 2권은 세조 대에 제작한 악보(樂譜)를 수록한 것으로, 『세종실록』의 악보와 함께 아악(雅樂) 연구의 자료가 된다.

현황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http://silok.history.go.kr)에서 번역본과 원문을 공개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세조실록』, 『성종실록』

단행본

김경수, 『조선시대의 사관연구』(국학자료원, 1998)
이성무, 『조선왕조실록 어떤 책인가』(동방미디어, 1999)
배현숙, 『조선실록연구서설』(태일사, 2002)
오항녕, 『한국 사관제도 성립사 연구』(일지사, 2009)

논문

강문식, 「조선왕조실록 연구의 현황」(『조선시대사학보』 74, 조선시대사학회, 2015)
신석호,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 보관」(『사총』 5, 고대사학회, 1960)
신석호, 「태조실록해제」(『국역 태조강헌대왕실록』 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정구복, 「조선초기 춘추관의 실록 편찬」(『허선도정년기념사학논총』, 1987)
차용걸, 「실록·사관·사고에 대하여」(『사고지조사보고서』, 국사편찬위원회, 1986)
차용걸, 「조선왕조실록의 편찬태도와 사관의 역사인식」(『한국사론』 6, 1979)

인터넷 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소개(http://sillok.history.go.kr/)
주석
주1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성인(聖寅). 예종 1년(1469)에 ≪세조실록≫을 편찬할 때, 사초(史草)를 고쳐 썼다가 발각되어 의금부에 수감되었다. 우리말샘

주2

관가에 속하여 있던 노비. 우리말샘

주3

조선 시대에 둔 춘추관의 정이품 벼슬. 우리말샘

주4

조선 시대에, 춘추관에 속한 종이품 벼슬. 우리말샘

주5

조선 시대에, 춘추관에 속하여 사료(史料)가 될 정치나 행정에 관한 일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 정오품ㆍ종오품으로 의정부ㆍ육조ㆍ홍문관 따위에서 같은 품계를 가진 벼슬아치가 겸직하였다. 우리말샘

주6

조선 시대에, 춘추관에 둔 벼슬. 품계는 정육품에서 정구품까지 있었으며, 실록을 편찬할 때 기초 자료로 삼았던 시정기를 기록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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