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산 수덕사 ( )

불교
유적
삼국시대 백제 말에,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德崇山)에 창건된 사찰.
유적/건물
건립 시기
백제
소재지
충청남도 예산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수덕사는 삼국시대 백제 말에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德崇山)에 창건된 사찰이다. 백제 승려 혜현은 수덕사에서 법화경의 강경과 독송에 힘썼다. 수덕사 대웅전은 충렬왕 때 세워진 건물로 유명하다. 백제 부흥 운동 때 승려 도침이 북부 수덕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정의
삼국시대 백제 말에,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德崇山)에 창건된 사찰.
건립 경위

수덕사(修德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本寺)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제30대 무왕혜현(惠現)이 북부 수덕사에서 대중이 있을 때면 주1주2 없을 때면 독송하였다고 한다. 절의 창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어 창건 설화가 분분하다. 사기(寺記)에는 백제 말에 숭제법사(崇濟法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한다.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3에는 599년(법왕 1)에 지명법사(知命法師)가 창건하였고 원효(元曉)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백제 부흥 주4 때 북부 수덕사가 중심인 적도 있었다.

창건 이후의 상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주5주6가 이곳에 머물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고, 1898년(광무 2)에 경허의 제자 만공(滿空)이 중창한 뒤 이 절에 머물면서 많은 후학들을 배출하였다. 우리나라 4대 총림(叢林)의 하나인 덕 총림(德崇叢林)이 있으며, 이곳에서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하고 있다.

형태와 특징

현존하는 주7로는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된 수덕사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冥府殿)을 비롯한 백련당(白蓮堂)‧청련당(靑蓮堂)‧염화실(拈花室)‧조인정사(祖印精舍)‧무이당(無二堂)‧심우당(尋牛堂)‧황하정루(黃河精樓)‧천왕문‧금강문‧ 일주문(一柱門)‧범종각(梵鐘閣) 등이 있다. 대웅전은 1308년(충렬왕 34)에 건립된 건물로서 건축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대웅전 안에는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불, 아미타불주8이 모셔져 있다. 2003년에 보물로 지정된 목조 삼세불 좌상은 만공이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있는 만행산 ‘귀정사(歸淨寺)’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1983년에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현, 유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여래탑이라고도 불리는 삼층석탑이 있다. 1936년 대웅전 중수 때 발견된 수덕사 벽화는 건립 당시의 것으로서 주악공양비천도(奏樂供養飛天圖)‧수화도(水花圖)‧야화도(野花圖)‧금룡도(金龍圖)‧오선도(五仙圖)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서까래에 희미하게 금룡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일주문은 도톰하게 깎은 돌기둥 2개에 기와지붕을 얹고 있다. ‘덕숭산수덕사(德崇山修德寺)’라고 쓴 현판은 손재형(孫在馨)의 글씨이며, 지붕의 처마에는 붉은 여의주를 문 용이 조각되어 있다. 범종각에는 1973년에 조성된 무게 6,500근의 종이 봉안되어 있다.

이 절의 산내 암자로는 정혜사(定慧寺)를 비롯하여 견성암(見性庵)‧금선대(金仙臺)‧환희대(歡喜臺) 등이 있다. 현재 이 절의 말사는 66개이다. 이 가운데 정혜사에는 비구 선원인 능인선원(能仁禪院)이 있으며, 견성암에는 비구니 선원인 제일선원(第一禪院)이 있다. 또 금선대에는 진영각(眞影閣)이 있으며, 진영각 안에는 만공의 영정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환희대는 『청춘을 불사르고』를 지은 김일엽(金一葉)이 기거하다가 죽은 곳이며, 견성암은 김일엽이 기거하던 곳이다.

이밖에 이 절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화유산으로는 1997년에 보물로 지정된 노사나불괘불탱, 2011년에 국가 등록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공탑, 1984년에 예산군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된 칠층석탑, 1984년에 예산군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되어 근역성보관(槿域聖寶館)에 소장된 거문고 등이 있다. 노사나불괘불탱은 1673년(현종 14)에 제작된 괘불로서 노사나불을 단독으로 나타낸 독특한 형식의 그림이다. 적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고 공간을 오색의 광선으로 처리하여 화려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만공탑은 만공을 추모하기 위하여 제자들이 세운 탑으로서 구형(球形)의 둥근 돌이 올려져 있는 특이한 부도이다. 조인정사 앞에 세워진 칠층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든 탑으로서 주9 위에 기단 면석 외부에 우주를 표현하고 있는데 면석에는 두께 10㎝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다. 기단 위에 주10의 옥신은 없으나, 그 대신 4개의 정사면체 석재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 주11을 받치도록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근역성보관에 소장되어 있는 거문고는 만공이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으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이 거문고에는 이조묵(李祖默)이 새긴 ‘공민왕금(恭愍王琴)’이라는 글씨와 함께 만공의 시가 새겨져 있다.

의의 및 평가

백제의 대표적인 절로 혜현의 법화경 독송과 도침의 백제 부흥 운동의 중심 사찰로 유명하다. 한국 불교를 해외에 알리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하였던 숭산(崇山, 1927~2004)이 1949년 고봉(古峰)에게 주12를 받은 사찰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유사』

단행본

권상로 편,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한국의 명산대찰(名山大刹)』 (國際佛敎徒協議會, 1982)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攬)-사찰편(寺刹篇)-』 (충청남도, 1990)
『덕숭산수덕사(德崇山修德寺)』 (불교성보문화연구소, 1998)

인터넷 자료

수덕사(http://www.sudeoksa.com)
주석
주1

가야성(迦耶城)에서 도를 이룬 부처가 세상에 나온 본뜻을 말한 경전. 모든 불교 경전 가운데 가장 존귀하게 여겨지는 경전이다. 쿠마라지바가 중국어로 번역하였다. 8권 28품. 우리말샘

주2

불교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경전 따위를 외우고 논의하다. 우리말샘

주3

어떤 하나의 주장이나 학설. 우리말샘

주4

백제가 멸망한 660년부터 663년까지, 흑치상지ㆍ복신ㆍ도침 등이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扶餘豐)을 옹립하여 백제를 다시 일으키고자 한 운동. 우리말샘

주5

대한 제국의 마지막 시기. 우리말샘

주6

조선 말기의 승려(1849~1912). 속성은 송(宋). 이름은 동욱(東旭). 선종(禪宗)의 중흥에 힘썼다. 우리말샘

주7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8

과거, 현재, 미래에 출현하는 모든 부처. 우리말샘

주9

건축물을 세우기 위하여 잡은 터에 쌓은 돌. 우리말샘

주10

탑기단(塔基壇)과 상륜(相輪) 사이의, 탑의 몸에 해당하는 부분. 탑의 중심을 이룬다. 우리말샘

주11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 우리말샘

주12

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 비구에게는 250계, 비구니에게는 348계가 있다. 우리말샘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