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노부는 고구려 초기에는 계루부나 소노부, 또는 연노부에 비하여 두드러진 세력을 떨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191년(고국천왕 13) 연나부(椽那部)의 반란을 평정한 뒤 정치를 새롭게 하려는 국면에서, 귀족들의 공동추천에 의하여 왕으로부터 국사를 일시 위임받았던 안류(晏留)가 동부, 즉 순노부 출신인 것을 보면, 다른 4부에 비하여 큰 손색 없이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원 翰苑』에 인용된 위략(魏略)의 기사에 의하면, 내부(內部)주 01)가 비록 왕의 종족이지만 그 반열은 동부, 즉 순노부의 아래라 하였으며, 그 까닭은 나라에서 동쪽을 으뜸으로 섬기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것은 순노부가 국가적 제의(祭儀)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졌던 것을 전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말기의 연개소문도 그 출신이 동부 또는 서부라 전해지고 있으나 그가 순노부에 속하였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