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연합장로회 선교사 로스(J. Ross)는 1872년 중국 영구항 우장에서 만주 선교를 시작하였고 1874년 한 · 중 국경 도시인 고려문을 방문해서 한국인 상인을 만난 후 한국인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1876년 의주 출신 이응찬을 어학 교사로 채용하고 한글을 익히면서 스코틀랜드연합장로회 선교사 매킨타이어(J. MacIntyre)와 이응찬 외에 백홍준, 김진기, 이성하, 이익세, 최성규, 서상륜 등과 함께 한글 성서 번역에 착수하였다.
번역은 한국인 번역자가 문리역본 한문 성서를 기초로 번역 원고를 마련하면, 선교사들이 그리스어 성서 및 주1 사전, 영어 성서와 주석을 참조하여 원고를 수정하고 어휘를 통일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로스는 1882년 주2 김청송의 도움으로 심양 문광서원 발행으로 『예수성교 누가복음전서』와 『예수성교 요안내복음전서』를 인쇄하였다. 계속해서 1883년 『예수성교성서 누가복음 뎨자행적』과 『예수성교성서 요안내복음』 수정본, 1884년 『예수성교성서 말코복음』, 1885년 『예수성교성서 요안내 이비소서신』 등을 인쇄하였으며, 1887년 주3 전체 27권을 담은 『예수성교전서』를 간행하였다.
번역 본문에 ‘아맘’, ‘아밤’ 등 서북지역 방언이 반영되었고, 일반 평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투의 용어가 많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한글 성서 번역을 통해 세종 창제 후 4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한글의 실용성과 과학성이 증명됨으로써 국어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 심양에서 인쇄된 성경이 국내에 반포되어 읽힘으로써 의주와 소래에 자생적 신앙 공동체가 설립되었고, 로스의 번역과 반포 작업에 참여했던 이들이 1885년 내한한 개척 선교사 주4와 주5의 조직 교회인 새문안교회와 정동제일교회의 창설에 참여함으로써 한국 기독교 선교의 기반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외 기관에 10여 부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중 연세대학교 학술연구원에 소장된 『예수성교전서』가 2016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으로부터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