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 ()

언어·문자
개념
한국어를 대상으로 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국어학은 한국어를 대상으로 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국어라는 특정 언어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개별 언어학에 속한다. 국어사의 연구인 통시론 연구와 한 시대의 언어 체계를 분석하는 공시론 연구로 나뉜다. 국어학사는 국어 연구의 역사로 한국어학사 또는 국어학연구사라고 한다. 국어학에는 언어학과의 관계가 다소 먼 문헌학적 연구가 있으며, 이 연구들은 국어학의 독자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국어학의 연구 결과를 실용적인 문제에 적용하는 분야로 국어정책론과 국어교육론이 있다.

정의
한국어를 대상으로 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개설

언어학이 세계 여러 언어의 보편적 속성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면, 국어학은 한국어라는 특정 언어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개별 언어학이다. 따라서, 국어학은 언어학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으며, 전체적으로 언어학의 방법론 위에서 국어학이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어학은 언어학과 직결되는 방향의 연구 이외에도 언어학과 다소 관계가 먼 독자적인 방향의 연구를 포함한다. 문헌학적 방향의 연구가 그 예이다.

언어학적 방향의 연구로서의 국어학은 하위분류로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우선, 여러 시대에 걸쳐 국어가 역사적으로 변화해 온 양상을 살펴보는 통시론적(通時論的) 연구와 어느 한 시대에 한정시켜 공간적으로 국어의 단면을 살펴보는 공시론적(共時論的) 연구의 두 방법이 있다.

통시론적 연구는 달리 표현하면 언어사의 연구, 즉 국어사의 연구이다. 통시론적 연구에서 제일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국어의 기원 문제이다. 이처럼 한 언어의 기원 내지는 계통을 밝히는 연구를 계통론(系統論, genealogy)이라고 한다. 국어는 알타이어(Altai語)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생각되므로, 국어 계통론에서는 국어를 알타이어에 속하는 퉁구스어 또는 몽고어 · 터키어와 비교하게 된다. 계통론은 여러 언어의 비교연구를 통하여 계통을 밝혀 나가므로 비교언어학(比較言語學, comparative linguistics)이라고도 한다.

통시론적 연구의 다음 작업으로는 시대구분의 문제가 지적된다. 현재의 연구결과로는 고대국어 · 중세국어 · 근세국어 · 현대국어 등과 같이 4단계로 구분함이 일반적이다. 고대국어는 역사시대에 들어와서 신라의 통일을 거쳐 신라의 멸망까지 대체로 1세기에서 10세기까지의 국어를 말하며, 중세국어는 고려시대로부터 조선 중기까지 대체로 11세기에서 16세기말까지의 국어를 말한다. 중세국어는 다시 둘로 나누어 11세기부터 14세기까지를 전기중세국어,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를 후기중세국어라고 한다.

근대국어는 17세기에서 개화기까지의 국어를 이르며, 현대국어는 현재 우리가 쓰는 말을 이른다. 이러한 시대구분 위에서 통시론적 연구는 언어의 하위구조 중 어떤 측면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음운사 · 문법사 · 의미사 · 어휘사 등으로 구분된다.

국어의 공시론적 연구는 어떤 한 시대에 초점을 맞추어 그 언어체계를 분석하는 연구이다. 가령, 1460년대 한 시기에 국한시켜 그 시대만의 국어를 그 앞뒤의 국어와 관계 없이 다룬다면 이것은 공시론적 연구에 속한다. 공시론적 연구는 앞서 통시론적 연구와 마찬가지로 언어구조의 어떤 층위를 중점적인 연구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음운론 · 문법론 · 의미론 등으로 크게 나뉘며, 이외에 음성학 · 방언학 등이 포함된다.

음운론은 자음, 모음, 악센트, 음장, 음절 등 국어의 소리 쪽을 연구하는 분야인데, 소리라 하더라도 뜻을 구별할 수 있는 소리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문법론은 형태론(形態論)과 통사론(統辭論)으로 나뉘는데, 형태론은 단어의 내부구조를 연구하는 분야이고, 통사론은 단어가 모여 문장을 이루는 방법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형태론은 두 가지 방향으로 연구된다. 첫째, 어간의 형성을 중심으로 하는 방향의 연구가 있다. 단어는 흔히 어간과 어미로 나뉘는데, 어간은 파생 접사가 어근(語根)에 붙거나 서로 다른 어근끼리 결합하여 새로운 어간을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어간의 내부구조를 살펴보는 형태론의 연구분야를 조어론(造語論)이라 한다.

둘째, 어간에 굴절어미가 붙는 체계, 즉 어미변화를 연구하는 형태론의 분야가 있다. 굴절어미는 동사 어간 뒤에 붙는 활용어미와 명사 어간 뒤에 붙는 곡용어미로 구별된다. 문장에는 여러 유형과 복잡한 구조의 원리가 있는데,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것이 통사론의 임무이다. 여기에는 국어 문장의 기본 성분 및 구조, 그리고 문장의 확대나 어순의 문제 등 여러 난제가 있다.

의미론은 여러 언어 단위의 의미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각 단어들이 어떻게 의미의 영역을 갈라 한 영역씩을 담당하게 되는가, 이러한 단어들이 결합하여 복합어를 이루고 구(句)를 이루고 문장을 이룰 때 의미의 영역은 어떻게 확대되고 변모되는가 등을 연구하는 분야가 의미론이다. 언어를 ‘음성+의미’로 분석한다면, 의미론은 언어의 반쪽을 형성하고 있는 의미의 문제 모두를 연구하는 분야인 것이다. 그러나 종래의 의미론은 주로 단어의 의미를 밝히는 데에만 한정되었고, 그래서 어휘론이라는 이름 밑에서 의미가 연구되기도 하였다.

음성학은 뜻과는 관계없이 사람의 소리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이 분야는 사람의 발음기관이 어떻게 생겼으며, 이들의 어떠한 작용으로 여러 음성들이 산출되는가, 나아가 이것들이 공기를 통해 전파될 때 음성학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며, 또 이들이 어떻게 청취되는가를 주로 자연과학적 입장에서 다룬다. 따라서, 학자에 따라서는 음성학을 국어학의 하위분야로 인정하지 않는 견해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음성학에 바탕을 두지 않은 음운론은 생각하기 어려우므로, 음성학을 음운론에 포함시켜 그 일부로 간주하자는 주장도 있다.

방언학은 한 언어의 지역이나 계층에 따른 분화를 연구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언어나 방언이 없는 언어는 결코 있을 수 없다. 방언은 지역의 차이에 따라 분화되는 지역방언과 지역 차이 이외의 요인에 의해 분화되는 사회방언의 두 종류로 나뉜다.

이상의 연구분야는 언어학과 직결된 것들이다. 언어학과의 관계가 다소 먼 연구로 문헌학적 연구가 있다. 이 연구는 고전의 주석, 금석문(金石文)의 해독, 문헌의 서지학적 연구, 특수 어휘의 수집, 국어학사의 연구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국어학의 독자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 밖에 국어학의 연구 결과를 실용적인 문제에 적용하는 분야로 국어정책론과 국어교육론이 있다. 국어정책론은 국어 전반의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하며, 국어순화, 외래어, 표준어, 문자정책, 철자법 등의 문제를 다룬다. 국어정책과 관련하여 그동안 제기되어 왔던 문제로 가로쓰기 문제, 한글전용 문제, 외래어표기법의 문제 및 표준어와 맞춤법의 개정문제 등이 있다. 국어교육론은 바른 국어를 학습시키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며, 언어 · 문학에 관한 교육의 이념 · 내용 · 방법 등을 개선하는 문제를 다룬다.

국어학 연구사

국어학사는 국어에 대한 반성과 연구의 역사로서 한국어학사 또는 국어학연구사라고도 한다. 국어학사의 시대구분은 국어학사를 기술하는 사관(史觀)의 차이에 따라 달라진다. 서술의 기점을 15세기에 고유문자가 창제되고 한자음에 관한 정리가 수행된 시기부터 잡는 경우와,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국어에 대한 반성과 언어생활의 합리화 방안에 대한 탐색까지 포함시키는 경우, 그리고 19세기 말에 서구식 언어학으로 국어연구가 시작된 이후부터 기술하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견해를 종합하면, 국어학사의 제1기는 15세기 이전, 제2기는 15세기에서 19세기 말까지, 제3기는 19세기 말에서 현재까지로 시대를 구분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각각을 다시 전기 · 중기 · 후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15세기 이전)의 국어학

이 시기의 중요한 사실은 한자의 수입과 그것을 통한 국어표기의 연구 및 국어에 대한 재인식이다. 한자의 수입시기는 적어도 기원전 2세기까지 소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로 말미암아 처음으로 문자생활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을 이용한 국어표기의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국어표기의 방법은 음(音)과 훈(訓)을 이용한 고유명사의 표기에서, 차츰 이두(吏讀) · 구결(口訣) · 향찰(鄕札)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단계에서 한자의 구성법을 이용해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기도 하고, 혹은 중국음을 국어에 적응시키기 위하여 음성적 대응의 규칙을 관습화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구결의 약자(略字)를 고안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표기법에 대한 인식은 국어의 구조적 특징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향찰에 나타나는 의미부와 형태부에 대한 표기방식의 차이는 국어의 구조에 대한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제2기(15∼19세기 말)의 국어학

중국의 성운학(聲韻學)을 바탕으로 한 음운의 연구가 주류를 이룬 시기이다. 전기는 대체로 세종에서 세조에 이르는 시기가 중심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업적은 훈민정음의 창제와 『동국정운(東國正韻)』의 편찬을 꼽을 수 있다. 1443년(세종 25)에 창제되고 1446년에 반포된 훈민정음은 문자생활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차자생활(借字生活)을 청산하고 표음문자를 통한 국어의 바른 표기가 가능해졌다는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국어학사적으로는 문자의 창제과정에서 연구된 음운학의 업적이 보다 큰 뜻을 가진다. 비록 등운학(等韻學)을 바탕으로 한 한자음의 재분석이기는 하나, 국어의 음운체계와 음절구조를 처음으로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실이다. 또한, 15세기에 훈민정음으로 쓰여진 문헌들은 질서정연한 정서법체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당대의 국어구조에 대한 깊은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동국정운』은 중국 한자음의 과학적인 분석을 통하여 우리 한자음의 특징을 규명하고자 한 점에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또한, 『동국정운』과 같은 운서의 편찬으로 중국어 음운과의 비교연구가 필연적으로 요청되었다. 이 방면의 업적으로는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이나 『사성통고(四聲通攷)』와 같은 것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한국어와 중국어의 음운상의 차이를 비교, 검토하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중기는 성종에서 현종에 이르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국어연구의 침체기, 또는 암흑기로 불린다. 학문적인 명맥을 찾는다면, 중종 때의 역학자(譯學者)인 최세진(崔世珍)의 국어 음운에 대한 비교와 반성을 들 수 있다. 그의 업적은 국어학사적인 면에서 볼 때 훈민정음의 실용적 가치의 재인식과 중국음과 한국 한자음의 음운적 차이를 비교, 검토한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전자는 『훈몽자회(訓蒙字會)』라는 초학자용 교재를 통하여 훈민정음의 음가와 이의 실용화에 따른 실제적 문제를 언급하였고, 후자는 『사성통해(四聲通解)』라는 운서를 통하여 한자음을 기준으로 한 중국음과 국어음의 음성적 차이를 밝히려 하였다.

후기는 숙종에서 19세기 말까지의 기간에 해당한다. 한때 침체에 빠졌던 한자음이나 훈민정음에 관한 연구가 이 시기에 들어와서 다시 활기를 띠게 된다. 이 시기의 학자들의 관심은 성운학(聲韻學)을 비롯하여 훈민정음, 이두, 어원, 방언 등의 여러 방면으로 확산되었다.

성운학에서는 1678년(숙종 4) 최석정(崔錫鼎)『경세정운(經世正韻)』, 1747년(영조 23) 박성원(朴性源)의 『화동정음통석운고(華東正音通釋韻考)』『화동협음통석(華東叶音通釋)』, 1751년 홍계희(洪啓禧)『삼운성휘(三韻聲彙)』, 영조황윤석(黃胤錫)의 「황극경세도(皇極經世圖)」와 「운학본원(韻學本源)」, 정조이광사(李匡師)의 『오음정(五音正)』, 1792년(정조 16) 서명응(徐命膺) 등의 『규장전운(奎章全韻)』, 1835년(헌종 1) 박경가(朴慶家)의 『사칠정음운고(四七正音韻考)』 등의 업적을 들 수 있다.

훈민정음에 대한 연구로는 1750년 신경준(申景濬)『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 영조 때 이사질(李思質)의 『훈음종편(訓音宗編)』, 정조 때 금영택(琴榮澤)의 『만우재집(晩寓齋集)』, 황윤석「자모변(字母辨)」, 정동유(鄭東愈)『주영편(晝永編)』, 1824년(순조 24) 유희(柳僖)『언문지(諺文志)』, 1846년(헌종 12) 석범(石帆)의 『언음첩고(諺音捷考)』, 헌종이규경(李圭景)의 「언문변증설(諺文辨證說)」, 1856년(철종 7) 정윤용(鄭允容)의 『자류주석(字類注釋)』, 1869년(고종 6) 강위(姜瑋)『동문자모분해(東文字母分解)』 등이 있다.

어원 · 어의에 관계되는 것으로는 1614년(광해군 6) 이수광(李睟光)『지봉유설(芝峯類說)』, 정조 때 홍양호(洪良浩)「공주풍토기(孔州風土記)」, 1789년 이의봉(李義鳳)의 「동한역어(東漢譯語)」, 1795년 이덕무(李德懋)「한죽당섭필(寒竹堂涉筆)」, 황윤석의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 1819년 정약용(丁若鏞)『아언각비(雅言覺非)』, 1836년 박경가의 『동언고(東言考)』가 있다.

이두에 관한 것으로는 1789년 이의봉의 「나려이두(羅麗吏頭)」, 정조 때 구윤명(具允明)『전율통보(典律通補)』와 편자 미상의 『유서필지(儒胥必知)』, 1829년(순조 29) 예문관학사들이 편찬한 『이두편람(吏讀便覽)』, 헌종 때 이규경의 「어록변증설(語錄辨證說)」 등이 있다.

제3기(19세기 말∼현재)의 국어학

갑오경장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기에 해당한다. 제2기가 주로 중국의 성운학이 중심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구의 언어학적 방법이 중심이 된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는 그 방법이나 범위에 있어서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개된다.

이 시대의 전기는 갑오경장에서 1931년 조선어학회가 창립되기까지로, 낡은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과학문명을 받아들여 세계적 기운에 호응하자는 민족적 각성이 강조된 시기이다. 따라서 국어의 연구는 바로 애국애족운동으로 직결되는데, 제일차적 목표는 언문일치운동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운에 따라 공문서의 문체가 국한문혼용체로 바뀌고, 교육용 도서는 물론, 신문 · 잡지에 이르기까지 국한문혼용 내지 국문전용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이러한 기운에 선도적 구실을 한 것은 교회와 학교라 할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유길준(兪吉濬), 서재필(徐載弼) 등을 들 수 있고, 정부에서도 1907년(융희 1)에 국문연구소를 설치하여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려고 한 점을 들 수 있다.

이 시기 국어연구의 중요한 관심은 문법의 연구에 있었는데, 중요한 업적으로는 유길준 · 최광옥(崔光玉)『대한문전』(1908), 주시경(周時經)『국어문법』(1910)을 필두로 많은 저서가 쏟아져 나왔다. 이 시기의 문법체계는 대체로 서양문법이나 일본문법의 모방으로, 국어 그 자체가 지닌 특징은 충분히 규명되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시경의 『국어문법』은 서구의 문법에서 벗어나 국어 자체가 지닌 특징을 밝히는 데 획기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어(語)를 형태소(形態素)로 분석하고, 각 형태소가 지닌 기능을 중시하여 전혀 독자적인 체계를 세우려고 한 점은 국어학사상 높이 평가할만한 것이다.

중기는 1931년 조선어학회의 창립에서 6 · 25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조선어학회(현재의 한글학회)의 창립은 국어학사상 여러 가지 의미에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외래어표기법 · 일어표기법 · 국어로마자표기법 · 국어음만국음성기호표기법을 비롯하여 표준어의 제정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업적을 남겼다.

또한 이 시기에는 박승빈(朴勝彬)을 중심으로 한 조선어학연구회(1931), 김상용(金尙鎔) · 김선기(金善琪) 등을 중심으로 한 조선음성학회(1935)가 창립되어 국어연구에 힘썼다.

문법연구에 있어서는 규범문법의 성립이 중심이 되는데, 특히 최현배(崔鉉培)『우리말본』(1937), 박승빈『조선어학』(1935), 이상춘의 『국어문법』, 정열모『신편고등국어문법』, 홍기문『조선문법연구』, 김윤경(金允經)『나라말본』, 장하일의 『표준말본』, 정인승『표준중등말본』, 이희승(李熙昇)『초급국어문법』 등의 많은 문법책이 출간되어, 국어문법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이 중에서도 최현배의 『우리말본』과 박승빈의 『조선어학』은 광복 전 문법체계의 쌍벽을 이루었으며, 특히 최현배의 『우리말본』은 규범문법으로서 문법학계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문법연구 이외에 여러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국어학사에 대한 업적으로는 김윤경의 『조선문자급어학사(朝鮮文字及語學史)』(1938), 훈민정음연구로는 최현배의 『한글갈』(1940) 등이 있으며, 향가의 해석을 통해 고대국어를 재해석한 연구로는 양주동(梁柱東)『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1942)가 있다. 이 밖에도 계통론, 방언론, 국어교육론 등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다.

후기는 6 · 25에서 현대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특징으로는 역사언어학의 강한 배경 속에 머물러 있었던 국어학이 구조언어학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1960년대를 전후하여 들어온 구조주의이론은 주로 프라그학파의 구조주의와 미국의 기술언어학(記述言語學)이었다. 구조주의적 기술방법은 지금까지의 전통문법에 반성을 가하여 국어가 지닌 구조적 특징의 규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에 들어와서는 구조주의이론이 국어연구에 있어 뿌리를 내리는 한편, 새로이 변형생성이론(變形生成理論)이 도입되어 국어연구에 새로운 진전을 가져왔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는 국어학의 연구분야가 획기적으로 넓혀져서 여러 면에 걸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우선 이 시기가 시작되는 1955년에 나온 이희승의 『국어학개설』은 앞시대의 연구 업적을 집약하면서 이후 국어연구의 방향을 시사한 노작이라고 할 수 있다. 국어사에 대한 연구로는 이기문(李基文)의 『국어사개설』(1961)이 지적되는데, 이 책에서는 국어사의 시대구분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고대국어에 대해서는 향가 및 차자표기 등에 관한 면밀한 검토와 함께 새로운 방법론을 동원함으로써 고대국어의 모습을 밝혀보려 하였다. 또한, 11세기 이후의 전기 중세국어에 대한 연구는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자료인 『계림유사(鷄林類事)』, 『조선관역어(朝鮮館譯語)』,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등을 검토하여, 15세기 이전의 국어의 모습을 밝혀보려 하였다.

그리고 훈민정음 창제 이후의 후기 중세국어에 대한 연구는 풍부한 초기의 정음(正音) 문헌을 통해 15세기 국어의 음운 · 문법 · 어휘 등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연구의 집대성으로 이숭녕(李崇寧)『중세국어문법』(1961)과 허웅(許雄)『우리옛말본』(1975)을 들 수 있다.

근대국어에 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주로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 등 중국어 역관(譯官)들이 남긴 자료와 기타 초기 정음 문헌의 중간본(重刊本) 등을 검토하여 국어의 변천과정을 밝혀 나갔다.

현대국어에 대한 연구가 특히 활발하였는데, 그것은 미국의 기술언어학이나 변형생성이론이 현대의 언어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는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1970년대는 종전에 소홀하였던 통사론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였는데, 이는 변형생성이론의 도입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그 밖에 각 지역의 방언에 대한 연구가 현지조사를 통해 심도있게 진척되었으며, 국어학의 역사에 관한 고찰도 계속되었다. 계통론연구는 알타이 여러 언어들과의 비교를 통하여, 국어가 알타이어족에 속함을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한편, 1960년대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한 한자음에 관한 연구가 진전되어 국어의 역사, 특히 고대국어의 모습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현황

1980년대를 전후하여 국어학은 우리의 전통적 언어연구를 바탕으로, 구조주의언어이론 및 변형생성이론 등 외국의 언어이론을 적절히 비판, 소화함으로써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업적들 뒤에는 음운론 · 형태론 · 통사론 · 의미론 · 방언론 · 계통론 등 분야별 연구가 뒷받침되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1980년을 지나면서 연구의 시야를 현대 공통어에서 벗어나 방언과 중세국어 및 고대어 쪽으로 돌리고 있어 국어학의 발전이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특히 구결과 이두, 향찰에 대한 연구를 비롯하여, 전기 중세국어 자료인 『계림유사』의 연구를 통해 고대어와 전기 중세국어의 모습을 밝히려는 노력이 있으며, 또한 그간의 연구업적을 정리, 평가하여 오늘의 국어연구의 밑거름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줄기차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국어연구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여 앞으로의 국어연구는 국어의 사실과 경험에 바탕을 둔 이론과 나아가 일반언어학에 이바지할 수 있는 국어학 이론을 정립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 국어를 연구하는 전국 규모의 학회로는 한글학회와 국어학회를 꼽을 수 있다. 한글학회는 조선어학회에 뿌리를 둔 전통 깊은 학회로서, 1979년부터는 규칙적으로 학회지 『한글』을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국어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 국어학회는 1959년 창립된 뒤 15년 간은 월례발표회를 가져오다가, 1974년 이후 학회지 『국어학』을 발간하고 있으며, 해마다 공동연구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밖에 1952년에 창립된 국어국문학회의 한 분과로서 국어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학회는 학회지 『국어국문학』을 발간하고 있으며, 매년 전국국어국문학연구발표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1975년에 창립된 한국언어학회는 국어학자만의 모임은 아니지만 새로운 일반언어이론의 소개를 통해 국어연구의 시야를 넓혀 주고 있으며, 학회지 『언어』를 발간하는 한편, 공동연구회를 개최하고 있다.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어문학연구실에서 계획한 한국방언조사연구계획은 우리나라 방언연구에 새로운 한 획을 긋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 계획은 먼저 6개월간에 걸쳐 방언조사계획을 수립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의 협의회를 개최하고 거기에서 수합된 결론을 바탕으로 조사계획을 수립하였다.

1979년에 처음으로 조사요원을 공개모집하여 사전 교육을 실시하는 동시에 세계 각국의 방언조사에 관한 실태를 조사하고 공동조사를 위한 조사항목과 조사지점의 선정에 들어갔다. 조사항목은 1년 6개월 간에 걸쳐 토론하여 1980년 6월에 『한국방언조사질문지』 2책을 간행하였다. 조사항목은 1,782개, 질문항은 2,766개로 구성되었는데, 방언조사를 위한 이러한 질문지의 작성은 우리나라 방언학상 초유의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지는 조사자들에 의한 여러 차례의 현지 조사를 통하여 실험하고 최후로 정리한 것이다. 이 질문지는 모든 조사지점을 동일한 방법에 의해 실시함으로써 동일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필수 불가피한 것이다. 이 질문지는 장차 방언조사의 규범이 될 수 있는 자료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조사지점은 138개 지점을 선정하였고, 조사자료집은 각 도별로 연차적으로 간행되어 1995년에 완간을 보게 되었다. 본래의 계획은 남한의 전수조사계획이 끝나면 순차적으로 북한까지 확대하여 전국을 망라할 것을 목표로 했으나, 북한까지 그 조사를 확대하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또 이 계획은 최종적으로 한국언어지도의 작성을 목표로 한 것이었으나, 이 계획도 중도에 무산되고 말았다.

언어는 민족문화유산으로서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국어를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시킬 의무가 있지만, 현재의 국어를 정확하게 기술하여 후세에 물려줄 의무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처음에 계획했던 북한의 방언조사와 한국언어지도의 완성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남한만이라도 이 정도의 방언조사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의 국어학을 위하여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부진했던 언어정책과 국어교육에 관한 문제도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국어교육도 넓은 의미로는 언어정책에 포함될 것이지마는 언어와 민족과의 상호관계를 고려한다면 언어정책은 우리의 문화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는 이 문제를 너무도 소홀히 다루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언어정책은 국가의 지도이념에 따라 국어교육과 국어생활의 목표, 방법과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깊은 연구 없이 그때 그때에 따라 편의적으로 시행되어 왔기 때문에 국어교육과 국어생활에 더욱 혼란을 가져 왔다.

언어정책의 과제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지금까지는 맞춤법문제, 외래어표기법문제, 한글전용과 국한문혼용문제, 한자 · 한문의 교육문제 당면한 과제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국한문 혼용과 한자 한문의 교육은 한글학회와 한국어문교육연구회간의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각급학교에 한자교육이 다시 실시하게 된 것은 새로운 세기를 여는 하나의 과제로서 진일보한 정책이었다고 할 것이다. 한국어문교육연구회는 특히 한자 · 한문의 교육과 국한문 혼용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며 기관지 『어문연구』를 간행해 왔다.

언어정책의 수립과 관련해서 1984년에 국립국어연구원(현재의 국립국어원)이 설립되었으며 언어정책의 올바른 방향을 탐국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계간으로 『새국어생활(국어생활)』을 간행하고 있으며, 국어교육과 국어생활에 관한 문제들이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통일한국에 대비한 언어정책과 국어생활의 건전한 지표, 국어교육의 참다운 방향모색 등이 광범위하게 다루어질 것이다.

한편 최근 국어사에 대한 반성과 고대국어에 대한 재인식에도 새로운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고대국어에 대한 연구는 국어사의 기술에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인데, 최근 고대국어에 대한 선행작업으로서 향가의 해독에 관한 새로운 시도가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상당한 업적이 나타나고 있다.

21세기를 바라보는 현단계에서 국어의 문제가 단순히 우리의 언어생활을 보다 합리적으로 수행하는 데만 그칠 것이 아니라 국력의 신장과 더불어 국어의 세계화를 통하여 새로운 세계 문화를 이끌어갈 구심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국어학도 보다 깊게 보다 넓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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