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릉 ()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
이칭
이칭
홍유릉(洪裕陵), 남양주 홍릉과 유릉(南楊州 洪陵과 裕陵)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합장릉
건립 시기
일제강점기
관련 국가
대한제국
관련 인물
순종|순명효황후|순정효황후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70년 05월 26일 지정)
소재지
경기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금곡동)
내용 요약

유릉(裕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이다. 오른쪽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이 있어 합하여 홍유릉이라 부르고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홍릉과 유릉은 황제릉으로 건립하였다.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
건립경위

1904년 9월 28일 황태자비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1872~1904)가 승하하자 용마산 내동(內洞)에 주1으로 주2를 정하고 유강원(裕康園)이라 하였다. 10월 17일부터 공역을 시작하여 11월 29일에 예식을 갖추어 장사를 치렀다.

원(園)의 격으로 조성하되, 제향 공간은 주3 대신 침전(寢殿)으로 조성하고 내부에 주4을 놓아 대한제국기의 특징이 보인다. 1907년에 순종(純宗, 1874~1926, 재위 1907~1910)이 왕위에 오르자, 황후로 승격되면서 유릉으로 격상하였다.

1926년 4월 25일에 순종이 승하하자 5월 5일에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이 묻힌 홍릉(洪陵)의 좌측 언덕에 봉표하고 7일부터 산릉의 공역을 시작하였다. 이때 홍릉의 예를 따라 순명효황후의 능침을 옮겨 합장하도록 하였다. 황후의 재궁을 옮겨와 6월 5일에 새 유릉에 안장하고, 6월 11일에 순종의 국장이 이루어졌다.

1926년에 유릉의 주5을 만들 때 가운데 순종의 현궁를 마련하고 동쪽에 순명효황후의 현궁을 배치하였으며, 서쪽은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1894~1966)의 자리를 예비하여 3실로 구성하였다. 1966년 2월 13일에 순정효황후가 승하하여 비워 둔 서쪽 실에 합장되니, 하나의 봉분 아래 3기의 실을 갖춘 동봉삼실(同封三室)의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변천

1926년 순명효황후의 능이 천릉하고 난 빈자리에 1929년에 골프장이 들어섰다가 1972년에 어린이대공원이 조성되었다. 현재 서울어린이대공원 입구 근처에 유경원에 있던 돌거리가 남아 있으며 2001년에 ‘순명비유강원석물’이라는 이름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형태와 특징

유릉은 홍릉의 예를 따라 황제릉으로 조성하였다. 능상에는 합장하여 하나의 봉분이 있으며, 주6과 난간석(欄干石)으로 치장하였다. 세 분의 합장릉이지만 주7은 하나만 두었으며, 좌우에 주8과 장명등(長明燈)을 세웠으나 이외의 석상은 침전 앞에 배치되었다.

침전은 정면 5칸에 측면 4칸 규모이며, 주9으로 조성되었다. 침전 내부에는 닫집을 두었는데, 홍릉의 것보다 규모가 크다. 침전 월대 정면에는 세 개의 계단을 두고 주10까지 얇고 넓적한 돌을 깐 길이 연결되었다.

길 좌우에는 주11 · 주12 · 기린 · 코끼리 · 사자 · 해치 · 낙타 · 말 순서로 석상이 마주 보도록 한 쌍씩 배치되었으며, 주13는 두 쌍이 배치되었다. 홍살문 앞에는 주14이 있는데, 재실에서 침전의 동쪽 계단까지 향어로가 조성되었다.

의의 및 평가

유릉은 홍릉과 함께 대한제국기에 황제릉으로 조성되어 조선왕릉의 전례와 차별된 사례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가 본격화된 시기에 건립되어 주15 공사에 일본 조각가 아이바 히코지로〔相羽彦次郞〕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사실적인 형태로 조각되었다. 1927년 『동아일보』에 일본 조각가의 참여로 인해 조선왕릉의 조각 수법이 행해지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기사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순명비유강원원소도감의궤(純明妃裕康園園所都監儀軌)』(1904)
『순종효황제산릉주감의궤(純宗孝皇帝山陵主監儀軌)』(1926)

단행본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Ⅸ』(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신문 · 잡지

『동아일보』(1927. 8. 25)
주석
주1

풍수지리에서, 집터나 묏자리 따위가 묘방(卯方)을 등지고 유방(酉方)을 향하여 앉은 자리.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여 앉은 자리이다.    우리말샘

주2

왕세자나 세자빈 및 왕의 친척 등의 산소.    우리말샘

주3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주4

궁전 안의 옥좌 위나 법당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    우리말샘

주5

임금의 관(棺)을 묻던 광중(壙中).    우리말샘

주6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주7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8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주9

위 절반은 박공지붕으로 되어 있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    우리말샘

주10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주11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주12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주13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주14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우리말샘

주15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집필자
신지혜(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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