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 ()

유교
인물
조선 전기에, 스승 김굉필이 갑자사화로 죽임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에 힘쓴 학자.
이칭
양청(養淸)
서봉(西峯)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73년(성종 4)
사망 연도
1537년(중종 32)
본관
진주(晉州)
출생지
미상
정의
조선 전기에, 스승 김굉필이 갑자사화로 죽임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에 힘쓴 학자.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양청(養淸), 호는 서봉(西峯). 사섬시정(司贍寺正) 유자빈(柳自濱)의 아들이다.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로 스승이 죽음을 당한 뒤에는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에 전심하였다. 그는 『대학』을 학문의 골격으로 삼고 6경과 3서를 주요과목으로 하여 제자서에까지 나아갔다.

특히, 『주역』에 정밀하였고, 천문·복서(卜筮)·음률·서화에도 정통하였다. 의술도 깊이 연구하여 어머니의 숙환에 직접 의약을 조제하여 치료하기도 하였다. 청빈한 가운데 우의를 잃지 않았고, 항상 남의 장점만을 말하고 나쁜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유우는 일찍이 연못이 말라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소식을 듣고 큰 재난이 닥칠 것을 예언하였는데, 그 해부터 몇 년 동안 흉년이 계속되어 대기근이 일어나자 그 구제에 진력하였다.

참고문헌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집필자
이영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