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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기(六臣祠記)

조선시대사문헌

 조선후기 문신·학자 송시열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죽음을 당한 사육신과 복위 운동에 관련된 인물들의 사우기(祠宇記)를 모아 저술한 정치서.   사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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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후기 문신·학자 송시열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죽음을 당한 사육신과 복위 운동에 관련된 인물들의 사우기(祠宇記)를 모아 저술한 정치서.사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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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책. 인본. 숙종 때송시열(宋時烈)이 엮은 것으로 1791년(정조 15) 박기정(朴基正)이 간행하였다. 책 끝에 성삼문(成三問)·이개(李塏)의 절명시(絶命詩)와 권상하(權尙夏)가 쓴 육신사우기서후(六臣祠宇記書後) 및 윤사국(尹師國)이 쓴 사우상량문(祠宇上樑文)이 부록되어 있다.
사육신 및 생육신은 물론이고 당시 사육신·생육신만큼 드러나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도 예우와 추증을 공평하게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 예로,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남효온(南孝溫) 등의 절의는 백세에 교화해 기릴만하니 사당에 모셔다가 향사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제단을 하나 더 만들어 육신들 외에 권자신(權自愼)·송석동(宋石同) 등을 향사해 공주의 동학사(東鶴寺)에서 행하고 있는 것처럼 향사할 것을 주창하고 있다.
또한, 지금 대구(大丘)의 하빈사우(河濱祠宇)는 순천박씨(順天朴氏)의 후손이 살고 있기 때문이고, 홍주의 노은사우(魯隱祠宇)는 창녕성씨(昌寧成氏)의 유택이 있기 때문이며, 과천의 노량사우(露梁祠宇)는 여섯 분의 의총(疑塚)주 01)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명분과 이유가 있지만, 그러나 노산군(魯山君)주 02)의 사당 옆에 육신사우(六臣祠宇)를 세우고 영령을 위로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영월호장(寧越戶長) 엄흥도(嚴興道)도 여기에 함께 배향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이 책은 송시열이 편역한 지 약 1세기가 지난 정조 때에 오면 단종복위 운동에 참여 또는 관련되어 참사되거나 절의를 지켰던 모든 신하들의 권형(權衡)주 03)을 위한 참고 자료가 되었다.
현재에도 『장릉지(莊陵誌)』에 인용된 내용을 기본으로 해 당시의 시대상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남의 눈을 속이고자 원래 무덤과 똑같이 만든 무덤
주02
端宗
주03
이 운동에 참여한 공로의 대소를 저울질함.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재호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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