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우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판사복시사를 역임한 관리.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목차
정의
고려후기 판사복시사를 역임한 관리.
생애 및 활동사항

1340년(충혜 복위 1) 1월 조적(曹頔)의 잔당이 원나라에 고해 바친 일로 말미암아 왕이 잡혀가 형부(刑部)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때 김인연(金仁沇) 등과 함께 끌려가 심문을 받고 풀려났다.

이 일이 수습되고 난 뒤 1342년 6월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로서 1등공신에 봉하여져 벽상(壁上)에 도형(圖形)이 되었으며, 전(田) 100결, 노비 10구를 하사받았다. 1343년 11월 원나라가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 왕을 잡아가고 이어서 폐신과 군소배들을 붙잡아갔는데 고용보(高龍普)와 친하여 끌려가지 않았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집필자
박옥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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