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지임(志任). 윤희인(尹希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흥효(尹興孝)이다. 아버지는 윤범룡(尹范龍)이며, 어머니는 이창(李昶)의 딸이다.
1588년(선조 21) 생원시와 진사시 모두 합격한 뒤 죽산과 예산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608년 호조의 좌랑과 정랑을 거쳐 정언·사간원보덕 겸 필선·지평·문학·장령 등을 지냈다.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무옥이 일어나자 문사랑(問事郎)에 추천되어 사건을 처리한 공으로 당상관에 올랐고, 이듬해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1614년 승지를 거쳐 이듬해 수원방어사가 되어 신경희(申景禧) 등이 능창군 이전(綾昌君 李佺)을 추대하려는 사건을 적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영평군(鈴平君)에 봉하여졌다. 1618년 한성부우윤과 형조참판을 거쳐 이듬해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뒤에 좌찬성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