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사행(士行). 윤세우(尹世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척(尹滌)이다. 아버지는 윤득성(尹得成)이며, 어머니는 김오상(金五常)의 딸이다. 부인은 유세화(柳世華)의 딸이다.
1740(영조 16)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홍문록에 선발되었다. 노론의 젊은 기예로, 1744년(영조 20) 정언으로 있을 때 소론 중신이었던 이종성(李宗城)과 박문수(朴文秀)를 탄핵하였다가 기장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742년 이후 홍문관부수찬·교리, 사간원정언·사간, 세자시강원보덕을 역임하였다.
1759년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 암행어사 이담(李潭)의 비위 사실 보고로 파직되었다. 다음해 승지가 되었고,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771년(영조 47) 대사간으로 있을 때 패초(牌招: 왕이 패를 내려 부르는 명령서)를 어겨 거제도에 유배되었으나, 유배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도중에 죽었다. 영조가 특별히 죄를 용서하고 부의(賻儀)가 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