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학동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수찬, 사간원정언, 세자시강원보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사행(士行)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10년(숙종 36)
사망 연도
1771년(영조 47)
본관
해평(海平,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주요 관직
홍문관부수찬|사간원정언|세자시강원보덕
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부수찬, 사간원정언, 세자시강원보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사행(士行). 윤세우(尹世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척(尹滌)이다. 아버지는 윤득성(尹得成)이며, 어머니는 김오상(金五常)의 딸이다. 부인은 유세화(柳世華)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40(영조 16)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홍문록에 선발되었다. 노론의 젊은 기예로, 1744년(영조 20) 정언으로 있을 때 소론 중신이었던 이종성(李宗城)과 박문수(朴文秀)를 탄핵하였다가 기장현감으로 좌천되었다. 1742년 이후 홍문관부수찬·교리, 사간원정언·사간, 세자시강원보덕을 역임하였다.

1759년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 암행어사 이담(李潭)의 비위 사실 보고로 파직되었다. 다음해 승지가 되었고,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771년(영조 47) 대사간으로 있을 때 패초(牌招: 왕이 패를 내려 부르는 명령서)를 어겨 거제도에 유배되었으나, 유배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도중에 죽었다. 영조가 특별히 죄를 용서하고 부의(賻儀)가 하사되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이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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