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상주(尙州)이다. 처음에 전법사(典法司)의 연리(椽吏)로 있으면서 권신 신시용(申時用)의 가신(家臣)이 되어 갑자기 전법사 좌랑(佐郎)에 올랐다가 부정하게 포(布) 150필을 받은 일이 발각되어 헌사(憲司)로부터 탄핵을 받게 되었다.
1335년(충숙 복위 4) 4월 탄핵을 막고자 사헌부지평이 되었다. 이는 환관과 짜고 궁내에 들어가 이미 내린 지 이틀이 지난 비목(批目: 왕의 재가를 받은 인사발령의 조목)을 훔쳐, 지평 이손보(李孫寶)의 이름을 지우고 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은 것이었다. 대관 신군평(申君平)이 이 고신(告身: 임명장)에 서명하지 않아 파면되었는데, 이튿날 장령 박원계(朴元桂)가 서명하여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