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윤상원(尹尙遠)이며, 윤이일(尹彛逸)에게 입양되었다.
1773년(영조 4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1년(정조 5) 도당록(都堂錄: 홍문관 관원을 선발하기 위한 의정부의 제2차 인사기록)에 올랐으며, 이 해에 교리(校理)·부교리가 되었다.
1783년 부교리로서 사간 김익휴(金翊休)와 함께 송시열(宋時烈)의 현손 송상덕(宋相德)의 죄를 용서하여, 가족들의 전적(典籍)을 풀어줄 것을 상소하였다. 이 해에 성절사 겸 심양문안사로 정사 이복원(李福源), 부사 오재순(吳載純)과 함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788년(정조 12) 대사간이 되었고, 이 후 여러 차례 대사간직을 역임하였는데, 1790년에는 간관으로서 우의정 김종수(金鍾秀)의 도리를 벗어난 행실을 탄핵하여 파직케 하였다. 이듬해 다시 대사간이 되고, 1792년 일시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복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