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인(閹人: 고자)으로 충렬왕 때 원나라에 보내져 원나라의 환관이 되었다. 원 황실의 총애를 받아 평장정사(平章政事)가 되었으며, 당시 원나라에 있던 충선왕과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1309년(충선왕 1)에는 원나라의 사신으로 고려에 와서 탐라(耽羅)의 쇠고기 공물을 폐지하도록 하였다. 다음해 충선왕이 고려인으로서 원나라의 환관이 된 사람들을 봉군(封君)할 때 회음군(淮陰君)에 봉하여졌다.
원나라의 위세를 믿고 방종하여 지방에 내려가서는 수령들이 조금만 잘못하여도 매질을 일삼았고, 낭장 백응구(白應丘)가 전라도에 봉사(奉使)하면서 역시 환관인 이대순(李大順)이 탈점한 인호(人戶)를 빼앗자,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옥에 가두는 등 횡포를 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