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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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근(全昌根)의 시나리오, 최인규(崔寅奎) 감독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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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창근(全昌根)의 시나리오, 최인규(崔寅奎) 감독의 영화.
내용

전창근(全昌根)의 시나리오, 최인규(崔寅奎) 감독의 영화. 1946년에 상영된 항일영화작품으로 촬영은 한형모(韓瀅模), 음악은 박태현(朴泰鉉)이 맡았다. 1945년, 8 · 15광복을 맞이한 우리 영화계는 일제하의 숨막히는 탄압에서 벗어나 마침내 민족영화를 창조하며 새롭게 부활하게 된다.

영화 <자유만세>는 바로 그 같은 우리 영화의 부활을 알리는 최초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내용에 있어 민족독립투사의 항일투쟁과 이들의 우정 · 사랑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광복영화의 효시이며, 영화사적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주인공인 최한중(全昌根 扮)은 독립투사로 감옥에 갇혀 있다가 어느 날 결사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동지인 박진범의 집에 머물렀다가 어느 양옥 지하실에 있는 독립운동의 거점에서 동지들과 재회한다. 일제의 패망이 임박한 1945년 초, 그는 헌병대에 쫓기면서도 동지들을 설득하여 독립투쟁을 계속한다.

그러던 중 폭약을 운반하던 동지가 일본헌병에게 붙잡힌다. 최한중은 동지를 구하려고 나선다. 그러나 도중에 헌병대에게 포위된 그는 일본경찰의 간부인 난부(南部)의 정부 미향(劉桂仙 扮)의 집에 은신하였다가 헌병대와 총격전을 벌이고 부상하여 대학병원에 수감, 치료를 받는다.

병원에서 한중은 전부터 그를 연모하는 간호원 혜자(黃麗姬 扮)의 도움을 받아 탈출해서 다시 동지들과 투쟁에 나선다. 마침내 일본의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원자탄이 투하되고 일본의 항복과 함께 조국은 광복을 맞이한다. 종로는 감격과 흥분에 싸여 있고, 이러한 감격 속에서 한중은 그를 위하여 목숨을 잃은 미향의 무덤을 찾는다.

이렇듯 <자유만세>는 조국광복을 위해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독립투사들과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상영 당시 조국광복의 기쁨에 넘친 관객에게 엄청난 감명을 주었으며, 독립투사 · 애국열사를 소재로 한 많은 영화들을 제작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당시 중국에서 이 영화를 본 장개석(蔣介石)이 ‘自由萬歲 韓國萬歲(자유만세 한국만세)’라는 휘호를 썼다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이 작품은 그 감격적인 테마와 함께 활극적인 묘사와 애틋한 남녀간의 애정을 담은 극적인 구성, 견실한 촬영 등에 있어서도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려영화협회(高麗映畫協會)가 제작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영화전사』(이영일, 삼애사, 1969)
『한국시나리오선집』 Ⅰ(영화진흥공사, 1982)
집필자
이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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