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8년(고종 45) 3월에 김준(金俊)·유경(柳璥) 등이 최의(崔竩)를 죽이고 정방을 궁중으로 옮겼다. 유경은 일찍이 최씨의 3대 집정 최항(崔沆)에게 신임을 받아 정방에 종사한 일이 있었고, 집권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궁중에 정방 설치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정방이 국가기관으로 되면서 권문세가들이 장악하게 되었고, 이제는 능문능리(能文能吏)의 신흥 관료의 진출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막아버리는 관부로 바뀌어 갔다. 이러한 현상은 충렬왕 때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고려 말까지 개혁 정치를 표명할 때마다 정방의 폐치가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것은 개혁 정치의 추진 세력으로서 신진 관인을 등용하려면 권문세가의 관부로 되어버린 정방을 폐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1298년(충렬왕 24) 충선왕은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단행하면서 정방을 폐지하고, 정방이 가지고 있던 전주권을 사림원(詞林院)에 주었다. 그러나 이 개혁은 실패하였다. 충선왕은 다시 1307년(충렬왕 33)에 원나라를 배경으로 하여 충렬왕의 일당인 왕유소(王維紹) 등을 숙청하고, 정방을 혁파하면서 전주권을 전리사(典理司)와 군부사(軍簿司)로 이관시켰다.
1320년(충숙왕 7)에 정방이 다시 설치되었다. 당시 충선왕은 아들 충숙왕에게 선위를 했지만
연경(燕京)주 02)에서 충숙왕의 일에 간섭했고, 특히 그의 신하였던 권한공(權漢功)·최성지(崔誠之)·이광봉(李光逢) 등에게 전주권을 장악하게 하였다. 이 때 백안독고사(伯顔禿古思)의 참소로 충선왕이 실각하게 되자, 충숙왕은
심왕당(瀋王黨)주 03)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설치했다. 그러나 1344년(충목왕 즉위년) 12월에 이제현(李齊賢) 등이 주도해 개혁 정치를 펼 때 다시 혁파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1월 다시 설치되었는데, 왕의 모비(母妃) 덕녕공주(德寧公主)의 압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정방이 설치된 뒤 신예(辛裔), 전숙몽(田叔蒙), 강윤충(康允忠) 등이 공주에게 의지해 전주권을 마음대로 한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1352년(공민왕 1) 1월에는 공민왕이 고질화된 권신 세력을 배제하고 새로운 정치 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문무전주권(文武銓注權)을 전리사와 군부사에 속하게 하였다. 그러나 조일신(趙日新) 등 권신들의 반발로 1356년(공민왕 5)까지 실시되지 못했으며, 이때의 정방 혁파는 명목상의 조처에 불과하였다. 이 해에 기철(奇轍) 일당이 비로소 제거되면서 정방은 혁파되어 전주권은 이부와 병부로 돌아갔다.
그러나 정방은 신돈(辛旽) 집권시에 부설된 듯하다. 그것은 성석린(成石璘)이 차자방지인(箚子房知印)이 되어 신돈에게 아부하지 않아 임박(林樸)으로 바뀌었다고 한 사실이나, 우왕 때 권신 이인임(李仁任)·임견미(林堅味)·염흥방(廉興邦) 등이 정방제조(政房提調)가 되어 전주를 마음대로 했다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 뒤 1388년(창왕 1)에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 이후 집권체제를 굳힐 때에 정방을 혁파하고 상서사(尙瑞司)를 설치하였다. 그것으로 지금까지 관제(官制) 밖에 있던 정방이 관제 내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이성계를 둘러싼 신흥세력의 진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정방의 폐치는 관인층 내부의 분열대립의 한 현상이었다. 권신들은 정방을 통해 인사권을 장악하고, 전민(田民)를 탈취해 전제(田制)를 문란하게 하였다. 따라서 전제와 전주법이 문란해진 시기가 바로 정방의 부설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예는 이인임·임견미·염흥방 등 정방제조가 된 권신들의 행위에서 잘 나타난다.
반면 신흥 관인층은 정방 권신들의 부패된 권력 구조에 반발하고 관인체제의 질서회복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정방을 혁파해 전주권을 전리사와 군부사에 줌으로써 관인지배질서를 회복시키고, 권신들이 탈취한 녹과전(祿科田)을 본래의 전주(田主)에게 돌려줄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표되는 사람으로는 이제현과 왕후(王煦) 등인데 특히 왕후는 정방 혁파와 녹과전에 대한 원주인에의 환급을 주장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났다. 정방 권신들에게는 정방 전주권(政房銓注權)의 장악이 토지를 겸병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 신진관인층에게는 자기발전을 위해 이들을 타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