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훈은 경상북도 영천과 대구에서 성장하였고, 경북대학교 법정대학을 졸업하였다. 한때 혁신정당인 진보당(進步黨)과 사회대중당(社會大衆黨)의 간부로서 일하였으며, 노동조합에도 관계하였으나, 5·16쿠데타 이후 3개월 동안 투옥되면서 정치와 인연을 끊고 창교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감 후 입산수도를 시작, 면벽수련법(面壁修鍊法)을 익혀 좌선과 주송(呪頌)으로 수련하던 중 강신현상을 체험하고 투시개안(透視開眼)되었으며, 최면술도 익혀 영동신기술(靈動神氣術)을 터득하였다는 것이다. 1964년부터 천교도교화원(天敎道敎化院)이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를 시작하였다.
1965년 폭행 및 유언비어유포 혐의로 구속되기도 하였고, 1967년 경상남도 울주군 상북면 산전리로 본부를 옮겼다. 한 때는 경북도내의 10개 지부를 포함하여 전국에 20개의 지부를 설치하고 300여명의 신도에 20여명의 교화사까지 양성하였다.
장병훈은 단군계나 봉남계, 증산계 등 여러 신종교 중소교단들을 방문하면서 합작을 통한 교세확장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불신만 커지는 바람에 교단 운영마저 날로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1970년에 다시 대구로 돌아와 단군숭녕회(檀君崇寧會) 경북지부장이 되어 대구 신천동 자택에 한얼학회라는 간판을 걸고 단군이념에 입각한 천교도의 교세재기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천교도의 최근 현황에 관해서는 조사된 바가 없다. 신앙의 대상은 한얼님이며, 이는 무형 · 무궁 · 무진 · 무외(無外)한 절대자로서 한님 · 한웅님 · 한얼님의 삼신(三神)을 의미하며, 이 삼신이 일체가 되어 우주를 완성하였다고 본다.
인화천(人化天)을 종지로 하고 인격완성(人格完成) · 협화사회(協和社會) · 신시반본(神市反本)의 세가지 강령을 내세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천교도의 교리체계는 여러 계통의 한국 신종교에서 다양한 교리들을 취합하여 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즉 삼신일체(三神一體) 한얼님은 대종교의 단군신앙에서 취하였으며, 인화천은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에서, 의통(醫統)이나 천사(天使)는 증산교에서, 그리고 수련행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수(法水)는 봉남교(奉南敎)에서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주는 주로 치병을 많이 한다고 한다. 경전으로는 교주가 직접 만든 『정경 正經』 · 『영감오도(靈感悟道)』 · 『치심거병(治心去病)』 · 『법문록(法文錄)』 · 『도경(道經)』 · 『성심경(誠心經) 등이 있고, 7계명과 수도정진율(修道精進律)의 수련방법이 있다.